고수리 에세이스트
그러나 나에겐 책 잘 사주는 선배가 있었다. 우연히 서로의 글을 읽고 교우하게 된 김 선배는 주변에서 유일하게 글을 쓰는 사람, 걸어갈 때도 밥 먹을 때도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선배는 나에게 밥보다 책을 사주었다. 한번 읽어보라며 새 책을 선물할 때도, 이 책 좋다며 선뜻 읽던 책을 내어줄 때도 있었다. 하루는 그가 “어떤 소설가의 첫 소설집인데 네가 아주 좋아할 것 같아. 나중에 네가 이런 글을 썼으면 좋겠다”라며 책을 내밀었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였다. 나는 그 책을 끌어안고, 충격과 질투와 행복과 용기와 희망을 품었다.
훗날 우리는 둘 다 책을 낸 작가가 되었다. 선배의 첫 책을 받아보았을 때, 그에게 진 빚을 갚아야겠다고 다짐했다. SNS 작가 계정에 이 이야기를 적었다. 그리고 내가 읽은 좋은 책을 두 권씩 골라서 보내줄 테니, 받고 싶은 청년들은 주저 말고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한 시간 만에 열일곱 명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꿈과 고민과 마음을 전하는 그들에게서 과거의 나를 보았다. 나는 청년들에게 책을 골라 보내주었다. “사람의 태도는 짧은 대화나 책 한 구절로도 변할 수 있다”라는 제인 구달의 말을 함께 적어서.
얼마 후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작가님이 보내주신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거치다가 꼭 평생 머물고 싶은 분야를 찾았어요. 감사합니다.” 반짝, 마음에 빛이 들었다. 그 빛이 너무 눈부시고 따뜻해서 선배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당신에게 받았던 ‘책 빚’을 다른 이에게 ‘책 빛’으로 갚았노라고. 나는 믿는다. 책 한 권으로도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책 한 권으로도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