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공 별세 8일만에 장례식 필립공, 25년전 장례준비팀 만들어 영구차-찬송가 등 직접 고르고 챙겨 코로나 여파 행사 축소… TV 생중계 찰스 왕세자 등 가족 30명만 참석 ‘왕실 갈등 논란’ 윌리엄-해리 형제, 장례식 끝난 뒤 함께 걸으며 대화 왕손빈 마클, 美서 화환-손편지 보내
운구 바라보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17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 공의 장례식이 런던 윈저성 내 성조지 예배당에서 거행되고 있다. 시신이 안치된 관은 필립 공의 혈통과 관련된 그리스, 덴마크를 상징하는 문양, 왕실 칭호인 에든버러 공작, 자신의 성인 ‘마운트배튼’이 새겨진 깃발에 감싸졌다. 관이 이동하는 성당 통로에는 찰스 왕세자, 앤 공주 등 필립 공의 자손들이 서 있다. 한쪽 좌석에는 코로나19 거리 두기에 따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왼쪽 상단)이 홀로 앉아 있다. 런던=AP 뉴시스
17일 오후 2시 40분 영국 런던 교외 윈저성. 장중한 음악이 울려 퍼지자 붉은색 군복의 근위대 장병들이 어깨에 관을 들고 성 밖으로 나타났다. 북소리와 함께 관을 실은 녹색의 랜드로버 차량이 천천히 움직였다. 차량 뒤로 찰스 왕세자(73)와 앤 공주(71)가 걷자 에드워드 왕자(57), 앤드루 왕자(61), 윌리엄 왕세손(39), 해리 왕손(37)이 줄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95)이 탄 벤틀리 차량이 뒤따랐다. 100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9일 별세한 여왕의 부군 필립 공의 장례식은 여왕과 자녀 등 30명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치러졌다.
○ 생전 필립 공이 직접 디자인한 장례식
이날 장례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시신 참배를 포함해 사람이 몰리는 모든 행사가 생략돼 영국민은 TV 생중계로 장례식을 지켜봐야 했다.
이날 장례식은 필립 공이 수십 년에 걸쳐 손수 준비한 대로 차분히 진행됐다고 BBC는 전했다. 필립 공은 25년 전부터 장례준비팀을 만들어 자신의 장례식을 대비했다. 필립 공의 시신이 안치된 관은 그리스와 덴마크를 상징하는 문양, 왕실 칭호인 에든버러 공작, 자신의 성인 ‘마운트배튼’이 새겨진 깃발에 감싸졌다.
그 위로는 화환과 칼, 해군 모자가 놓였다. 1921년 그리스에서 태어난 필립 공은 1940년 영국 해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947년 여왕과 결혼하면서 그는 그리스와 덴마크 왕위를 포기하고 영국인이 됐다. 관 위의 칼은 선왕인 조지 6세가 필립에게 결혼 기념으로 선물한 해군검이다. 관을 감싼 각종 상징들은 영국 왕실 역사상 최장수 군주의 배우자인 자신이 평생 여왕에게 충성한 점을 부각시키면서도 ‘여왕의 남편’ 이전의 정체성도 드러내도록 기획된 것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손수 개조한 랜드로버 영구차 17일 윈저성 내에서 필립 공을 실은 영구차가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영구 차량은 필립 공이 2003년 직접 골라 2019년까지 개조해온 랜드로버 모델이다. 런던=AP 뉴시스
○ 홀로 앉은 여왕
로이터는 이날 장례식이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손 간에 화해의 장이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두터운 우애’의 상징으로 통하던 이 형제는 해리가 지난해 1월 왕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벌어졌다. 캐서린 세손빈과 메건 마클 왕손빈 간의 갈등, 마클의 인종차별 폭로 등이 이어지면서 형제는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은 채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으로 떠난 해리는 1년여 만에 장례식 참석을 위해 영국으로 귀국했다.
윌리엄과 해리는 운구 행렬에서는 사촌인 피터 필립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걸었으나 장례식이 열리는 성조지 예배당에 들어갈 때는 나란히 붙어 입장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는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임신 중인 마클은 미국에서 TV를 통해 장례식을 지켜봤다. 마클은 화환과 함께 직접 쓴 손편지를 보냈다고 미 연예매체 배니티페어가 17일 보도했다. 필립 공의 관은 성조지 예배당 지하의 왕실 묘지에 안치됐다. 장례식을 끝으로 공식 애도 기간도 종료됐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