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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왜 美처럼 백신 직접 못만드나…정답 외우는 주입식 교육엔 미래 없어”

입력 | 2021-04-19 03:00:00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광형 KAIST 총장 대담






“우리가 창의적 교육을 했다면 지금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만들지 못하고 어디서 사올지 고민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과 이광형 KAIST 총장은 13일 서울대 총장실에서 이뤄진 대담에서 “우리의 주입식 교육이 피상적인 것만 보게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장은 “미국은 방역에 엉망인 나라로 보이지만 백신을 만들어낸 반면 우리는 질서정연하게 방역에 임하고도 백신을 만들지 못했다”며 “정답을 고르는 교육 때문에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현상에만 반응하고 이면을 못 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오 총장 역시 “정답을 외우는 버릇을 고치는 것이 1학년생에 대한 학교의 과제”라며 공감을 표했다.

국내 최고 명문인 서울대와 KAIST 총장이 함께 언론 대담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총장은 독창적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대학 교육의 현주소를 자성하며 다양한 대안을 나눴다.

오 총장은 “국내 대학들이 현재의 세계대학랭킹을 유지하는 게 신기할 정도”라며 “중국 대학들이 정부의 엄청난 지원을 받아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논문 수 등 계량적 지표에 목매지 않고 남들이 안 하는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 총장은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정부 규제가 여전히 많다”고 지적했다.

“서울대-KAIST, 現 재정으로 세계랭킹 유지하는 게 신기할 정도”

오세정 서울대 총장(왼쪽)과 이광형 KAIST 총장이 13일 오전 서울대 총장실에서 동아일보와 대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세계 대학 랭킹을 보면 우리 대학들이 현재 순위를 유지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오세정 총장)

“일류 의식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이광형 총장)

오세정 서울대 총장과 이광형 KAIST 총장은 1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총장실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국내 대학들의 열악한 현주소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며 예리한 지적들을 쏟아냈다. 이날 대담은 이 총장이 취임 인사를 겸해 오 총장을 방문하면서 이뤄졌다. 동아일보 기자가 이 자리에 동석해 인터뷰 형식으로 대담을 진행했다. 두 총장은 2006년 삼성 미래기술연구회 회원으로 인연을 맺은 뒤 오랜 기간 국내 과학계의 리더로 함께 활동해 왔다.

―한국의 대학은 지금 어디쯤에 있나.

▽오세정 총장=QS 세계 대학 랭킹을 보면 중국 대학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온다. 우리의 현재 순위를 위태롭게 하는 최대 요인이다. KAIST와 서울대 모두 현재의 정부 지원만으로 세계 일류 대학이 되기 어렵다. 창업이나 기술사업화 같은 재원 조달 방안이 필요하다.

▽이광형 총장=
지식 중심 시대에는 대학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데 한국에는 세계 일류라고 할 만한 대학이 아직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여주는 지표다. 세계 일류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서울대와 KAIST가 더욱 분발해야 하는 이유다.

―두 대학에 최고의 인재들이 입학하지 않나.

▽오=한 서울대 연구교수가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란 책을 냈다. 성적이 좋은 학생 1000여 명을 인터뷰했는데 일부는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농담까지 죄다 받아 적는다고 한다. 교수와 생각이 다를 땐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한단다. 고교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어떻게 하면 틀리지 않는지를 가르친다. 서울대 1학년생들에 대한 학교의 과제는 정답을 외우던 버릇을 고치는 것이다.

▽이=정답 고르기 교육의 폐해는 대학을 넘어 한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사회 이슈에 접근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자. 국민들이 현상에만 반응하고 이면은 들여다보지 않게 된 것은 정답을 골라잡는 교육의 탓도 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미국은 방역에 엉망인 나라로 보이지만 백신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질서정연하게 방역에 임했지만 백신을 어디서 사와야 할지 고민하기에 바쁘다. 다음 감염병에 대비해 무엇을 할지는 엄두도 못 낸다. 주입식 선다형 교육에는 미래가 없다.

▽오=대학들이 공무원 사관학교로 변해가고 있다. 학생들은 남이 하는 것을 해야 안심한다. 로스쿨이 인기를 끌면 거기로 몰린다. 자신의 길을 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런 고질병이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서울대 총장이 되면 대학 입시와 고교 교육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도록 교육부가 너무 많은 걸 미리 정해 놓았다. KAIST도 입시에서 선행학습 문제를 냈다고 정부의 제재를 받지 않았나.

▽이=인원 감축 제재를 받았다. 내용을 알아보니 관점에 따라 응용문제로 볼 가능성도 있었다. 이런 규제는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KAIST는 정시 비중을 선도적으로 줄였고 입학사정관제 역시 맨 먼저 시작했다.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려면 무엇을 고쳐야 하나.

▽오=연구 평가 시스템에 병폐가 많다. 정부가 연구개발에서 제품 상용화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하려는 게 문제다. 미국 과학재단(NSF)의 경우 연구비는 수여(grant) 개념이다. 성실하게 사용했다면 성과를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는 계약(contract) 개념이다. 논문 몇 편을 쓸 건지를 약속을 받고 평가한다.

▽이=학내에서 연구비를 심사할 때 성공 가능성이 80% 이상이면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성공 가능성이 80% 이상이라면 이미 새로운 연구가 아니다. 그 대신 세계 최초, 진짜 도전적인 과제에 파격적으로 지원하겠다.

▽오=우리의 연구 풍토에서는 아직도 논문이 얼마나 인용됐는지 보는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 등을 중시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시절 세계 일류 학자를 연구단장으로 뽑기 위해 평가위원 절반 이상을 외국인 학자로 꾸렸다. 그들에게 응모자의 ‘임팩트 팩터’와 논문 개수 등 정보를 제공했더니 판단만 흐려진다고 안 보겠다고 했다. 아이디어와 계획을 적은 제안서만으로 판단하겠다고 했다.

▽이=세계적인 대학이 되려면 우수 교수 확보가 관건이다. 우리는 ‘테뉴어(정년보장)’ 심사를 할 때 논문 수보다 얼마나 새로운 것을 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평가가 정성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탈락한 교수들은 대부분 교육부 소청심사에서 다시 살아나서 돌아온다. 소청심사위원회가 계량적 평가 결과가 없다면서 소청자의 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대학이 불복해 소송을 내도 법원의 인식마저 비슷하다.

―평소 융합교육 확대를 강조하는 이유는….

▽오=인공지능(AI) 연구 상황을 살펴보려 미국 스탠퍼드대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를 방문했더니 두 학교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결국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왜냐고 물어보니 AI는 자체 연구와 더불어 응용이 중요한데 MIT는 의학이나 인문사회 계열이 없어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 서울대는 AI 교육연구위원회를 만들 때 공대 교수의 비율을 50%로 제한했다. 그 대신 의대와 미대 등 다양한 분야를 참여시켰다.

▽이=취임 일성으로 인문사회 분야를 강화하고 미술관도 건립하기로 했다. 미래전략과 과학저널리즘, 지식재산 등 학문의 외연을 확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융합형 공동 수업을 제안한다. 두 학교가 각자 특장점을 바탕으로 같은 주제의 수업을 만들고 학생들이 서로 수강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대의 인문사회계와 KAIST의 공학이 융합하면 좋겠다.

―두 대학의 협력이 중요해 보인다.

▽오=
이 총장께서 관행을 벗어난 방법으로 변화와 성공 사례를 만들어 달라. 그런 시도는 얼마든 환영한다. KAIST의 변화는 먼저 서울대 이공계에, 이어 인문사회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서울대는 항공모함처럼 방향 전환이 쉽지 않지만 바꾸면 흐름을 만드는 힘이 있다. 다른 대학에 개혁의 의지와 명분을 제공한다. 선순환 관계다.

▽이=KAIST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과학기술에 특성화돼 동질적이다. 빠른 변신과 새로운 시도에 용이하고 그렇게 해 왔다. 서울대는 국내 대학의 표준 역할을 해 왔고 국가 전체의 변화를 가져온다.

―연구개발 역량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특허권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오=대학이 기업 지원을 받아 진행한 연구에서 특허가 개발되면 보통 기업이 가져간다. 특허권 귀속은 두 당사자 협약에 따르지만 연구비를 쥔 기업이 ‘갑’이다. 미국에서는 반대로 대학이 가져간다. 대학의 지식재산권은 잘 이용하면 굉장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이=인공지능으로 제어하는 엘리베이터를 연구한 적이 있다. 연구 후 특허를 회사에 줬더니 후속 연구가 막혔다. 그 회사가 소유한 원천 특허에 번번이 걸려 결국 후속 연구를 접어야 했다. 독자적인 연구였기 때문에 계속했더라면 세계적인 결과물이 나왔을 것이다. 이런 걸 경험한 미국은 특허를 대학에 준다.

▽이=외국 저널 구독료 부담도 대학의 연구 역량을 키우는 데 큰 장애물이다. 외국 대형 출판사들이 감당하기 힘든 구독료와 데이터 접근료를 요구한다. 지난해 서울대는 80억∼90억 원, KAIST는 50억∼60억 원의 사용료를 지불했다.

▽오=서울대 도서관도 예산을 감당할 수 없어 구독 저널 수를 줄이고 있다. 이공계 분야의 전자저널들은 몇몇 출판사의 독과점으로 피해가 더 크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등이 연합해 몇몇 출판사의 저널을 보이콧했다고 한다. 우리도 공동 대응해야 한다.

―우리 대학들이 일류로 도약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이=‘일류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일류의 자존감과 책임감이 있으면 흉내를 사양하고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한다. 일류 사회 시스템은 이런 도전을 독려하고 실패를 끌어안는다. 우리는 실패연구소를 만들어 시행착오를 역사와 자산으로 삼기로 했다.

▽오=‘일류 의식’이라고 해도 좋고 ‘품격’이라고 해도 좋다. 품격은 최고를 지향하고 독창성을 추구하는 장인정신이다. 선진국 이론을 수입해 되파는 걸 마다한다. 서울대는 세계적 수준의 대학(world class university)이지만 세계를 이끌어 가는 대학(world leading university)은 아니다. 품격과 자존감이 높아질 때 사물을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세계를 리드하려면 의식이 일류로 바뀌어야 한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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