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무직들 “우린 왜 노조 없나”
송혜미 정책사회부 기자
얼마 전 상급 노동단체 간부 A 씨가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최근 LG전자, 금호타이어 등 제조분야 대기업에서 사무직 노동자들이 별도 노조를 결성하는 배경에 대한 설명이었다. A 씨 말처럼 현재 50대가 주축인 생산직 노조와 20, 30대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사무직 노조는 ‘한 지붕 두 가족’처럼 방향성이 크게 다르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젊은 사무직 노조가 궁극적으로 산업화 이후 60년 동안 공고히 지켜진 연공서열식 임금체계의 개편까지 실현시킬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 “우린 왜 노조 없나” 반발하는 사무직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등 국내 노동계는 철저히 대기업 생산직 중심으로 구성됐다. 기본적으로 사무직 노조가 결성된 경우가 드문 탓이다. 있더라도 발언권이 약한 편이다. 사무직의 경우 생산직보다 임금 수준이 높고, 임원 승진 가능성 등 때문에 노조 가입자가 적었다. 생산직보다 파업 효과가 적어 노조를 결성할 동기도 크지 않다.
하지만 최근 제조 대기업의 사무직을 중심으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생산직 중심의 노조 때문에 사무직이 불이익을 본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설립된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조 유준환 위원장은 “성과급이나 임금체계에 사무직 직원의 불만이 많은데도 생산직 노조는 항상 무분규로 임·단협을 체결했다”고 지적했다.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는 이달 출범했다. 지난해 사측이 지급하기로 한 격려금이 생산직에게만 지급되면서 사무직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두 노조는 모두 젊은층 중심의 사무직 노조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LG전자 유 위원장은 1991년생 4년 차 연구원이다. 금호타이어 김한엽 위원장은 1987년생 10년 차 과장이다. 이른바 ‘MZ세대’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를 아우르는 말이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사무 연구직 노조 설립을 준비하는 ‘HMG 사무연구 노조’(가칭) 임시집행부 역시 MZ세대가 주축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생산직에 비해 ‘단결’이 어려웠던 사무직이 이제 와서 모이는 이유는 뭘까. 그 해답도 MZ세대가 국내 기업의 주축으로 떠오른 데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성세대에 비해 공정성을 중시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는 데 관심이 큰 세대 특성 때문에 노조 결성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카카오 등에서는 젊은 직원들이 성과급 지급의 공정성을 언급하며 경영진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사무직 노조 결성 역시 이런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
○ 사측과 직접 교섭하기까지는 ‘첩첩산중’
사무직 노조가 출범한 LG전자를 예로 들어 보자. 이 회사 사무직 노조 조합원은 약 3500명. 생산직 노조 조합원은 1만 명이다. 따라서 생산직 노조가 사측과의 교섭 테이블에 앉게 된다. 금호타이어 역시 생산직 노조가 여전히 교섭 때 대표 노조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회사가 생산직과 사무직 노조 각각을 대상으로 교섭할 수도 있다. 교섭대표제도의 취지는 복수 노조로 인한 혼란과 무질서를 방지하겠다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원한다면 개별교섭도 가능하다. 하지만 사업주가 먼저 나서서 개별교섭에 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 번 개별교섭에 임하면 이후 소수 노조가 제각각 교섭을 요구했을 때 거부할 수 없게 된다.
LG전자 사무직 노조는 생산직과는 별도로 임·단협에 나서겠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했다. 소속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고용형태 등이 크게 다른 경우 노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두 노조가 교섭창구를 분리해 별도 교섭을 할 수 있다.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 역시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앙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사례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군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교섭 분리가 인정된 전례는 거의 없다”며 “사무직 노조의 근로조건이나 고용형태가 기존 노조와 크게 차이가 나는 등 필요한 조건을 충족해야 분리를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 임금체계 개혁의 원동력 될까
기존 임금체계는 젊은 직원의 ‘양보’를 일정 부분 바탕에 둔다. 젊을 때 적게 받는 대신에 나이를 먹고 부양할 가족이 생겨 돈 쓸 일이 많은 40, 50대에게 보상을 늘린다. 연봉제 등 기타 임금체계를 도입한 기업에서도 사실상 호봉제 원리에 따라 보상을 지급할 만큼 연공서열의 문화는 뿌리 깊다. 하지만 평생직장 개념이 흐릿해지고, 이직이 잦은 MZ세대는 후일의 ‘복지’보다 지금 눈에 보이는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무직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현대차그룹 직원 한 명은 “기존 노조는 정년 연장이나 복지 증대를 요구하지만 새 노조가 원하는 것은 일한 만큼 받는 정당한 임금”이라고 강조했다.
LG전자 유 위원장 역시 인터뷰에서 “회사가 지급하는 보상은 직급의 높낮이나 근속연수에 좌우되는 데다 성과급 기준 역시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똑같은 성과를 내더라도 임원 급여는 높은 데 비해 직원 처우는 낮다”고 덧붙였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청년들이 요구하는 ‘공정’의 핵심은 능력만큼의 보상을 바로 지급해 달라는 것”이라며 “사무직 노조 설립 바람이 앞으로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송혜미 정책사회부 기자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