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만든 건 국경을 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 발전을 돕기 위한 것이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행장은 18일 이렇게 강조했다.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 전 출범할 것으로 알려진 디지털 위안화가 중국 ‘국내용’일 뿐 미국 달러화 패권에 도전하기 위한 시도가 절대 아니라며 자세를 낮춘 것이다.
▷CBDC는 은행 계좌, 신용카드 없이 휴대전화 앱 등을 이용해 결제, 송금이 가능하고 기존 통화보다 발행 및 거래 비용도 현저히 낮다. 코로나19 같은 상황이라면 정부가 동시에 전 국민 ‘전자지갑’에 지원금을 쏴줄 수도 있다. 거래 기록이 모두 남기 때문에 돈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어 범죄 등으로 인한 ‘지하경제’도 차단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화폐인 셈이다.
▷최근 조 바이든 행정부는 디지털 위안화가 미국에 위협요인이 될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국제 은행 간 거래의 38.3%를 차지하는 달러에 비해 위안화 비중은 2.4%로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미국 제재를 받는 이란, 북한 등과 중국이 거래할 때 디지털 위안화는 미국 주도 국제 금융결제망을 피해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날 런민은행 현직 부행장이 “공식 출시 시간표는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 목표는 달러화나 다른 국제 통화를 대체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극구 해명한 것도 미국 측 분위기가 심상찮아서다.
▷2005년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은행 북한 계좌를 미국 재무부가 동결했을 때 북한 지도부에선 “피가 마르는 심정”이란 말이 나왔다. 달러 중심의 금융결제망은 이런 식으로 미중 신(新)냉전에서 가장 강력한 ‘차가운 무기’가 될 수 있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제조업에서 시작된 미중 간 ‘테크 전쟁’이 바야흐로 국제금융 영역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