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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의 對話]“바뀐 세상 모르고 예전 방식만 찾는 사람들은 빨리 집에 가야…”

입력 | 2021-04-20 03:00:00

김세연 전 미래통합당 의원




김세연 전 의원은 15일 인터뷰에서 “대화, 양보, 타협할 줄 모르는 공동체 구성원들은 이 반목과 대립이 자신들의 미래도 짓밟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며 “침묵하는 다수가 깨어나서 극단주의자들을 몰아내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없는 보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이진구 기자

《재·보궐선거는 끝났지만 그렇다고 정치가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두 거대 정당의 다음 먹잇감이 대선으로 바뀐 것 외에는. 국민 입장에서는 이전투구만 일삼는 기성 정치판이 못마땅하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는 게 사실이다. 최근 ‘리셋(reset), 대한민국’을 출간한 김세연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미래의 발목을 잡는 과거의 정치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킬 방법을 찾으려는 작은 시도”라고 말했다. 18, 19,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당 해체’를 주장하며 지난해 총선에 불출마했다.》




―정치판을 떠났는데 왜 그런 고민을 하는 건가.

“과거에 파묻혀 서로 이전투구하는 정치로는 우리의 미래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 때문에 국민이 만성적인 고통을 받는 나라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실 정치인은 아니지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시민 각자가 져야 할 일정 부분의 공적 책무도 있다고 생각하고….” (찾았나?) “나름대로는… 정치와 행정이 혁신하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을 시간조차 갖지 못하게 우리가 환경변화를 더 빠르게 수용해서 이들을 끌고 가자는 것이다.”

―‘우리’가 국민을 말하나? 국민이 그런 일을 하기는 쉽지 않은데….

“구성원들에게 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적·정신적 여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여유가 없거나, 있어도 내 문제라는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무관심해지기 쉬운 점은 있다.” (대신 그런 고민을 하라고 정치인들이 있는 건데 당신은 기성 정치판을 못 견디고 나오지 않았나.) “음… 현역 정치인으로 남는 게 더 추가적인 효용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에 같은 노력을 했을 때 더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뜻은 좋은데 현실은 문빠, 태극기 부대 등 극단주의자들이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서 침묵하는 다수가 깨어나서 극단주의자, 분열주의자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런 힘을 한번 모아보자는 것도 책을 만든 이유 중 하나고. 바른정당 창당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기존 힘은 너무 강하고, 새로운 힘은 미약해서 넘어서지 못했다. 그렇다고 정치 혐오증에 빠져 정치를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바뀔 거라 믿고, 또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정치 혐오증은 당신이 더 강한 것 같은데.) “하하하, 과거의 정치를 놔두면 공동체의 불행으로 이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의무감도 함께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소수의 사람만이 정치인이 되는 것보다 더 많은 시민들의 폭넓은 정치 참여가 이뤄져 시민과 정치인의 경계가 흐려지는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 교과서적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모두가 ‘깨어있는 시민’이 돼 스스로 정치 주체가 되자는 것이다.”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와 기본소득 논쟁을 벌였는데… 상대와 주제가 모두 대선과 관계가 있다보니 ‘혹시 생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그건 아니고…. 작년 하반기부터 ‘기본모임’이라는 연구모임을 통해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 정당이 해야 할 일인데 보수정당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다가올 현실이 위중한데 아무 대책 없이 무방비로 있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보수 정당이 쓸 수 있을 정도의 정리된 기본소득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2019년 11월 국회 정론관에서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김세연 전 의원. 동아일보DB


―그런데 왜 이 지사와 논쟁을 한 건가.

“이 지사가 단기 목표로 제시한 1인당 연 50만 원이면 월 4만 원, 중기 목표인 연 100만 원이면 월 8만 원 정도인데 이걸 기본소득이라고 하는 건 유권자 기만행위다. 우리가 제시한 1인당 월 30만 원 지급을 위해서는 180조 원 이상이 필요한데 이 재원을 만들어내는 것은 나라를 새로 만드는 것에 준할 정도로 크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월 4만 원 정도로 시작하는 건 지금도 이리저리 빼서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을 시행한 세계 최초의 국가지도자라는 타이틀을 남기고 싶어서 기본소득이 아닌 것을 무리하게 이름 붙인 것 같아서….” (그래서 화장품 샘플을 주면서 화장품 주는 척한다고 꼬집은 건가? 이 지사가 뭐라고 반박하던가.) “1000억대 자산가라 서민의 어려움을 잘 모른다고…. 4인 가구에 연 400만 원이 얼마나 큰돈인 줄 아냐고 하더라. 논리적인 반론을 듣고 싶었는데 논의가 더 진전되지 못했다.”

※이 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1인당 월 4만∼8만 원은 1000억대 자산가로 평생 어려움 없이 살아오신 김세연 의원께는 화장품 샘플 정도의 푼돈이겠지만 먹을 것이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저축은커녕 빚에 쪼들리는 대다수 서민들에게 4인 가구 기준 연 200만∼400만 원은 엄청난 거금”이라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지난해 853억 원을 재산 신고했다.

―국민의힘은 기본소득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지난해 김종인 비대위원장 시절에 정강정책에 넣기는 했는데 실제로는 주요 정치인 중 한두 명을 제외하면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시간문제일 뿐 인간이 기계의 업무를 보조하든가, 더 이상 노동할 필요가 없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닥칠 생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대비해야 한다.” (일자리 문제를 꼭 기본소득으로 풀어야 하나.) “민주당처럼 공공분야에서 불필요한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이 제대로 된 처방이 아니라고 한다면 보수 정당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도록 해야 한다는 원론적이고 상투적인 말밖에 못 했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요즘 기업들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개발 등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분야는 대거 채용하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는 고용을 줄이고 있다. (정치인들이) 환경변화에 맞게 스스로를 업데이트 하지 않고 자신들이 젊었을 시절 이야기를 지금도 계속하면 안 된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돼도 이제는 고용이 늘기 어렵다. 무지하거나, 나태하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일자리 증발 시대에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기본소득의 도입은 불가피할 것 같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실패했고, 스위스는 2016년 월 300만 원의 기본소득안을 국민투표에서 부결시켰다.) “그 나라들은 연금·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데다 우리처럼 인구가 급감하지 않고 있다. 나라마다 처한 여건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우리 현실에 맞게 공적연금 등 기존 복지제도를 정비하고, 국민의 삶에 짐이 되는 방만한 행정부를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는 계기를 기본소득 도입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기성세대가 자신이 젊었을 때를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건 미래세대에 못할 짓을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예를 들어 연금개혁도… 기성세대가 젊을 때는 인구도 늘고, 취직도 잘될 때라 연금에 대한 고민이 덜했다. 더군다나 지금 의사결정 과정에서 최고위직에 있는 연령층이 대체로 은퇴를 앞두고 있다보니 미래 세대가 받게 될 영향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으로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결정을 미루는 것 같다. 건강한 공동체라면 다음 세대의 문제를 내 것처럼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기성세대가 ‘세상이 바뀐다고 하던데?’ ‘바뀌나?’ 정도의 인식만 갖고 제대로 된 대비를 안 하면 그 여파는 미래 세대가 전부 뒤집어쓸 수밖에 없지 않나.” (좀 다른 질문인데 박근혜 정부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 해체를 주장했다.) “나름대로는 보수정당이 바뀐 세상에 더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당시 청와대가 관심을 보이던가.) “그런 인식이 있었으면 전경련을 통해 K재단, 미르재단을 만들지도 않았을 테고 역사가 달라졌겠지.”

―그렇게 나라를 바꾸고 싶다면 왜 직접 하지 않나.

“왜 여의도 밖에서 떠들기만 하느냐는 건가? 하하하. 봉사하는 마음으로 정치에 몸을 담았지만 내가 갈 길이 아닌 것 같아서…. 지금은 영웅 한 사람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 같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물러나니까 불과 며칠 만에 과거로 돌아가는 걸 보고 있지 않나. 혼자서는 풀 수 없다. 깨어있는 다수의 시민들과 이들의 연대를 기반으로 한 집단이 등장해야 하는데… 10년, 20년이 걸려서라도 되면 정말 다행일 것 같다. 결과와 관계없이 그런 노력을 계속 하려고 한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