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연인 요제피네 브룬스비크.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불과 몇 해 전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죽을 결심을 했던 젊은이였다. 장래가 촉망되던 음악가에게 귀가 들리지 않는다. 그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그를 벼랑 끝에 세웠다. 그러나 그는 절망을 새로운 헌신으로 바꾸었다. 아직 더 써야 할 음악이 남아 있기에,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듣지 못하는 삶을 받아들이겠다. 오직 음악에 삶을 걸겠다는 것이 젊은이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예술은 그런 결연한 투쟁정신이나 갸륵한 헌신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괴테는 인간의 최고 능력을 경탄할 줄 아는 데서 찾았다. 그런데 경탄은 마음과 감각이 열려 있을 때 가능하다. 모든 인간에게 생존은 엄숙한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생존 문제에 너무 붙들려 있으면 경탄의 능력을 발휘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자기 모자람을 확인하는데도 마음이 기쁘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다. 베토벤이 사랑에 빠지자 음악도 온화하고 나긋나긋해진다. 사랑이 주는 설렘과 싱싱한 경탄이 베토벤 교향곡 4번에 온통 봄기운을 둘러준 것이다.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지휘로 4번을 듣는다. 가로막는 리듬을 사뿐히 넘어 온화한 기쁨을 노래하는 2악장의 플루트 소리를 이 봄날 마음에 담아 보자. 아무리 투쟁적으로 살아왔더라도, 누구에게나 봄과 사랑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잊지 말자.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