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문재인 정부에서 승승장구해온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차기 검찰총장 지명 여부를 놓고 지금 법조계에서 ‘총성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이 지검장의 수사중단 외압 정황을 파악한 검찰은 조만간 이 지검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하려는 반면 이 지검장을 차기 총장으로 밀어온 여권에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불기소 카드’로 상황 반전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 지검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문 대통령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장으로 일하며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서 수사 중단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이 지검장은 공수처의 ‘황제 조사’ 논란에 이어 검찰의 기소 방침으로 지난주 차기 총장 유력 후보군에서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그 직후 이 지검장이 4차례나 불응했던 소환 조사에 전격적으로 응하고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장문의 입장문을 내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서면서 수사 구도가 다시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검찰 수사에 대한 이 지검장의 공세적 대응은 여권이 이 지검장을 차기 총장 후보로 지명하려던 기존 복안을 계속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이 지검장 카드를 접었다면 총장 공석 장기화 사태를 감안해 곧바로 다른 경쟁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인선을 진행하면 되는데도 후속 절차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사건이 총장 지명이 걸려 있는 이 지검장은 물론이고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이광철 대통령민정비서관 등 정권 핵심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청와대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대목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지검장 기소를 막는 데서 여권이 공수처 불기소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수사를 완료한 검찰이 공수처 요구를 수용해 기소 판단만 남긴 채 사건을 다시 공수처로 이첩하고, 공수처가 이 지검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릴 경우 이 지검장을 차기 총장 후보로 지명하는 데 장애가 됐던 결정적 요인이 제거될 수 있다. 그간 공수처로의 사건 이첩을 줄곧 주장해온 이 지검장이 18일 낸 A4용지 6장 분량의 입장문에서 “공수처의 수사·처리”를 거듭 요구한 것도 공수처의 불기소 처분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공수처가 지난달 수사팀조차 구성하지 못한 공수처의 상황 등을 이유로 이 지검장 사건을 검찰로 재이첩하면서도 ‘수사 완료 뒤 공수처가 기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사건을 송치하라’는 공문을 보낸 것도 이 지검장 불기소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는 조치로 해석됐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19일 이와 관련해 “검사들이 왔으니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공수처법 24조 1항에는 ‘처장이 수사의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추어 수사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 24조 3항에는 ‘처장은 피의자, 피해자, 사건의 내용과 규모 등에 비추어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해당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고 사건 재이첩도 명시돼 있다.
지금 논란이 되는 지점은 공수처는 사건을 검찰에 재이첩해도 기소 판단 권한은 공수처에 남아 있다는 주장이고, 검찰은 “공수처의 이첩 대상은 ‘사건’이고 이첩 받은 기관은 그 기관이 보유한 권한(경찰-수사, 검찰-수사·기소·공소유지)을 행사해 해당 사건을 처리하는 것일 뿐이라 ‘수사 권한’만 이첩한다는 개념은 상정하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앞서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공수처가 검사의 범죄사건에 대한 수사권·공소 제기권을 검찰보다 우선해 보유·행사하는가’라는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의 질의에 “담당 재판부가 법률을 해석·적용해 판단할 사항”이라고 답했다. 검찰이 이 지검장을 기소하면 공은 법원으로 넘어가 공수처 출범 이후 검사 기소 적절성에 대한 첫 판단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