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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14개월’ 게이트 노숙…“난민접수 거부 위법”

입력 | 2021-04-21 14:54:00

환승객이란 이유로 난민 신청 안받아
인천공항에서 1년2개월 간 방치 생활
수용 임시해제 결정으로 공항밖 나와
"한국 시민들이 날 받아주길 간청해"




 인천공항에 약 1년2개월 동안 갇혀 있던 아프리카인이 환승객이라는 이유로 난민 신청 접수조차 받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며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 항소심에서도 받아들여졌다.

서울고법 행정11부(부장판사 배준현)는 21일 A씨가 법무부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 인정 신청 접수 거부 처분 취소 등의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각하 판결했다.

각하는 소송이나 청구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본안 심리 없이 재판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1심은 ‘접수 거부를 취소해달라’는 주위적 청구는 각하 판단하면서도 ‘난민 신청 접수조차 받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의 예비적 선고를 내렸고 이날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이 끝난 뒤 A씨는 대독을 통해 “제 쌍둥이 형제는 고향에서 살해당했다. 살해당할까 봐 돌아가는 길이 두렵다”며 “다섯 아이가 있었지만 어딨는지 알 수 없고 다시는 볼 수 없다. 저는 인생에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라고 전했다.

이어 “제가 인천공항에 살아남은 것은 신이 도우셨다고 할 수밖에 없다”면서 “한국 시민들이 저를 받아줄 것을 간청한다. 저를 머물게 해준다면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A씨 측 대리인은 “오늘 선고로 환승객이라는 이유로 난민 신청 접수도 안 받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됐다”며 “한 사람이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목숨을 위협받는데 항소까지 하면서 연장하는 것에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최소한 난민 신청 접수 거부를 법정에서 다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A씨의 큰 희생이 있었지만 첫 사례부터 좋은 판결이 나와 다행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출입국 당국의 탈법적 제도가 개선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대리인은 ‘법무부가 부당하게 상고해 A씨의 고통을 가중하지 말고 사과할 것’, ‘정부는 항공사들 뒤에 숨어 부당한 인권 침해를 무시하지 말고 절차를 직접 관리할 것’, ‘모든 난민에게 정당한 심사 기회를 부여할 것’ 등도 요구했다.
아프리카 출신 남성 A씨는 정치적 박해로 가족과 지인 십여명이 살해당하자 고국을 떠났고 한국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탔다가 지난해 2월15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A씨는 난민 신청을 했지만 법무부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은 ‘환승객은 입국 자격이 없어 난민 신청서를 쓸 자격조차 없다’는 이유로 난민 여부조차 판단하지 않았다.

A씨는 인천공항 제1터미널 내 43번 게이트 앞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공익변호사들과 시민의 모금을 통해 음식과 생활비, 의료품을 지원받았지만 지병으로 공항에서 쓰러진 적도 있었다.

그는 법무부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이 난민 신청서를 접수하지 않은 것이 부당하다며 이를 취소 또는 위법을 확인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출입국항에서의 난민 인정 실체에 대한 절차를 개시하지 않는 부작위는 위법함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법무부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에 A씨는 수용 임시해제를 신청하는 소송을 냈고 법원은 지난 13일 “A씨가 그간 환승 구역에서 사생활의 보호·의식주·의료서비스 등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처우를 받지 못했다”며 “수용을 임시해제한다”고 결정했다.

결국 인천공항에서 1년2개월 동안 갇혀 있던 A씨는 공항을 떠나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현재 A씨는 시민단체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