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CPU를 컴퓨터의 뇌, 파워 서플라이(파워)를 심장이라고 한다. 파워는 가정으로 공급되는 교류 전기를 PC 내 각 부품들이 쓸 수 있는 직류로 변환해서 보내는 역할을 한다. 몸 곳곳으로 혈액을 보내는 심장과 그 역할이 꼭 닮았으니, 참 적절한 비유다. 당연히 파워가 없으면 컴퓨터를 켤 수도 없다.
그런데 막상 PC를 조립할 때는 그 중요성이 간과되기 쉬운 부품이 파워다. CPU나 그래픽카드처럼 성능을 직접 결정하는 제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정된 예산에서 PC를 맞추다보면 CPU, 그래픽카드, 램에는 좀 더 욕심을 내고, 나머지 부품에는 인색해지는 경우가 잦다. 파워도 예산 절감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출처=셔터스톡)
품질이 낮은 파워를 쓰면 당장 컴퓨터가 작동은 하는 것처럼 보여도 내부에서는 비명을 지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정밀한 반도체 부품들은 전류와 전압에 민감하다. 안정적으로 전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컴퓨터가 제 성능을 내지 못하거나 갑자기 재부팅 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싸구려 파워를 쓰다간 이런 꼴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출처=셔터스톡)
과거에는 이렇게 기준 미달의 ‘뻥파워’가 적지 않았다. 사람들이 파워에 돈을 쓰는데 인색하다 보니 제조사들도 부실한 제품을 만들고, 저렴한 가격만 장점으로 내세운 제품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2009년에는 국내 유명 PC 하드웨어 매체들이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제품들을 테스트한 결과, 적지 않은 제품들이 표기 출력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부하에서도 제대로 버티지 못하는 부실한 제품이라는 게 드러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출처=셔터스톡)
당시 사건은 많은 소비자가 파워의 중요성, 저가 파워의 위험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정부도 지난 2012년 전기용품안전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파워를 안전관리대상 전기용품으로 지정했다. 제조사 차원에서도 쇄신하며 품질을 개선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뻥파워’를 찾아보기는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저렴한 제품을 써도 된다는 건 아니다. 최소한 믿을만한 제조사에서 제조한 제품인지, 내 PC에 걸맞은 성능을 갖춘 파워인지, 여러 안전장치와 편의 기능이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마이크로닉스 클래식 II 풀체인지 700W 80PLUS (출처=IT동아)
이해를 돕기 위해 ‘마이크로닉스 클래식 II 풀체인지 700W 80PLUS’ 제품을 예시로 들어 설명하겠다.
가장 먼저 봐야 할 건 정격 출력이다. 정격 출력은 파워의 용량이라고 보면 된다. CPU, 그래픽카드 등 내가 컴퓨터에 장착한 부품들이 사용하는 전력에 맞는 용량을 고르면 된다. 마이크로닉스 제품은 이름에도 나와 있듯 정격출력 700W짜리 제품이다. 700W의 출력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다는 뜻이다.
700W 정도면 웬만한 게임용 PC에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다. 보통 간단한 사무용 정도로 쓰는 컴퓨터라면 300~500W면 충분하고, 게임용 고사양 컴퓨터라면 최소 600W에서 750W 이상까지 사용한다.
조립할 PC 사양에 알맞은 파워 용량을 가늠할 때 보통 그래픽카드를 기준으로 삼는다.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가장 전기를 많이 먹는 부품이기 때문이다. 그래픽카드 제품 설명을 보면 제조사들이 써놓은 사용 전력과 권장 파워 용량이 있다. 제조사가 제시하는 권장 파워 용량을 최소치로 잡고 여기에 100W 정도를 추가하면 넉넉히 쓸 수 있다.
가격비교 사이트 등에서 권장 파워 용량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다나와 캡처)
정격출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파워 가격도 비싸니, 출력이 지나치게 높은 파워를 구매할 필요는 없지만,어느 정도 여유는 두는 게 좋다. 자동차도 오래 타면 노후화로 연비가 낮아지지 않는가? 파워도 마찬가지다.
너무 딱 맞는 파워를 구매하면 당장은 괜찮아도, 나중에 효율이 떨어져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컴퓨터 사용량이 많거나, 오버클록을 해서 쓸 계획이거나, 부품을 자주 업그레이드할수록 처음부터 넉넉한 용량의 파워를 구매하는 편이 좋다.
(제공=마이크로닉스)
참고로, 정격출력이 700W인 제품이라고 컴퓨터를 켜둔 동안 주구장창 700W를 다 쓰는 건 아니다. 정격출력은 ‘필요하면 이 정도까지는 안정적으로 출력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혹시나 용량이 큰 파워를 사면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까 걱정했다면 안심해도 된다.
전기요금이 신경 쓰인다면 눈여겨 봐야 할 게 파워의 전력 효율이다. 앞서 파워는 가정으로 보내주는 교류를 직류로 바꿔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정 부분 전력 손실이 발생한다. 파워의 전력 효율이 높을수록 이때 손실되는 전력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효율이 80%인 제품이 500W 출력을 내려면 625W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효율이 높은 제품을 쓸수록 전기요금도 아낄 수 있다.
\'80PLUS\' 인증마크 (출처=IT동아)
효율을 확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제품에 있는 ‘80PLUS’ 인증 마크를 확인하는 것이다. ‘80PLUS’는미국 에너지 효율 솔루션 업체 클리어리절트(CLEAResult)가 발급하는 인증인데, 115v 기준으로 효율이 최소 80%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다.
좀 더 정확히는 파워의 20%, 50%, 100% 부하에서 80% 이상 효율을 내야 한다. 효율이 좀 더 좋으면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티타늄 등 더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 ‘마이크로닉스 클래식 II 풀체인지 700W 80PLUS’는 ‘80PLUS 스탠더드’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230V 기준 82~85%의 효율을 내는 제품이다.
케이블 구성에 모자람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출처=IT동아)
케이블 구성도 중요하다. 파워가 심장이라면 파워에 달린 케이블들은 혈관이다. 각 케이블은 PC 내부 부품에 전력을 공급하는데, 부품에 따라 이용하는 커넥터 종류가 다르다. 메인보드에는 20+4핀, CPU는 보조전원으로 4핀과 8핀, 그래픽카드는 6핀이나 8핀(6+2핀), 하드디스크나 SSD는 SATA 전원 커넥터를 쓴다.
만약 그래픽카드를 여러 장 장착할 계획이라면 6핀이나 8핀이 넉넉하게 있는 제품을 골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SSD나 하드디스크를 많이 쓴다면 SATA 전원 커넥터 개수도 확인해야 한다. 사실 용량이 큰 파워일수록 커넥터도 넉넉히 들어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넉넉한 용량의 파워를 구매한다면 커넥터가 부족할 일은 별로 없다.
플랫케이블은 두께가 얇아 선 정리가 편하다 (출처=IT동아)
좋은 파워일수록 조립 편의성을 생각해서 케이블 형태에도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 클래식 II 제품은 플랫케이블을 채택하고 있다. 플랫케이블은 칼국수처럼 납작한 선인데, 두께가 얇아 선 정리하기가 한결 편하다.
내부 선을 끼웠다 뽑았다 할 수 있는 모듈형 제품도 있다. 사용하는 선만 꽂아두면 되니 훨씬 깔끔한 정리가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가격대가 일체형보다 비싼 게 흠이다.
과전류, 과전압 보호장치 등이 갖춰져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나 낙뢰로 인해 컴퓨터가 손상되는 불상사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파워는 4000V까지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갖췄다.
과전류, 과전압 보호장치가 있어야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출처=IT동아)
자세히 알아보기엔 머리가 아프다면 너무 저렴한 제품을 고르는 일만 피해도 낭패를 피할 수 있다. 최근에는 파워 품질이 상향 평준화됐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 제품이라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는 성능, 보호장치, 편의기능이 다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본인에게 필요한 파워 용량만 정한 뒤 100W당 8,000원에서 10,000원대 제품을 고르면 된다. 700W 제품이라면 최소 56,000원을 투자하는 게 좋다.
동아닷컴 IT전문 권택경 기자 tikitak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