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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칼럼]과학적 사고와 합리적 결정, 정치인에게 필요하다

입력 | 2021-04-22 03:00:00

1967년 과학기술처 발족 이후
한국의 경제 발전 동력된 과학기술
합리적 사고 키우는 미래 번영의 근간
과학 분야 제대로 대우하는지 돌아봐야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신록(新綠)이 이미 많이 짙어졌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라는 시 구절이 연상되는 계절이다. 자연의 힘찬 부활을 잔인함으로 연결한 시상(詩想)이 경이롭다. 3월에 법인세 신고를 마쳤는데 다시 5월 종합소득세를 생각하면, ‘잔인한 4월’이 저절로 실감된다는 소상공인의 하소연은 문학이 아닌 현실이다. 요즘의 각종 세금을 생각하면 잔인한 달은 4월만이 아닌 듯싶다.

그러나 대한민국 4월은 ‘과학의 달’이다. 그리고 어제는 1967년에 과학기술처가 발족된 것을 기념하는 ‘과학의 날’이었다. 그해 5월 3일에는 박정희, 윤보선 두 후보가 각축하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국민적 관심은 모두 선거에 쏠려 있었을 텐데, 그런 와중에도 과학기술 진흥을 통한 국가 번영을 위해 전담부처를 설립한 일은 참으로 대단하다.

1967년 4월 21일자 동아일보 1면, 선거 소식으로 가득 찬 지면에 과학기술처 발족은 아주 작은 단신으로 취급되었다. 바로 전날 프라하에서 벌어진 세계여자농구대회에서 우리 팀이 일본을 꺾었다는 뉴스가 훨씬 더 큰 지면을 차지했다. 이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축전 소식이 과기처 발족 기념사보다 더 비중 있게 보도되었다. 당시의 사회적 가치관이었을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 없이 경제성장을 이룰 수는 없다”로 축약된 대통령 기념사는 더할 수 없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의 도구만은 아니다.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과학과 기술은 확연히 구분되는 분야다. ‘Science & Technology’가 우리 사회에서는 어떻게 ‘과학과 기술’이 아닌 ‘과학기술’이 되었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모든 측면에서 황무지와 다름없던 대한민국 초기에 과학과 기술이 함께 뿌리를 내리며 서로 엉킨 듯싶다. 사실 물리학 등의 자연과학은 철학 등의 인문과학과 똑같은 학문이다. 즉, 주변의 현상과 사물에 대해 ‘왜?’라는 호기심을 갖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정신 활동이다. “왜 밤과 낮이 바뀌나?”는 인류 태초부터 지녔던 질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변화가 지구 자전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해 법칙으로 만들어 낸 물리학은 그 근본이 호기심이라는 점에서 철학과 마찬가지다.

이에 비해 기술은 전통적으로 무언가를 생산하는 육체 활동이다. 기술은 실패하면서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기술자가 만든 것이 상품화되고, 대량생산 시대를 맞아 기업이 커다란 부(富)를 쌓으면서 기술은 국가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금속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던 신라시대에도 에밀레종을 주물(鑄物)한 빼어난 기술은 있었다. 그런데 근현대에 이르러 과학에 의해 축적된 지식 혹은 과학이 추구하는 합리성이 기술력 향상에 절대적 역할을 하면서 과학과 기술은 어깨동무를 하게 되었다. 기술 인력을 키우는 공과대학에서 자연과학의 기초를 교육하는 이유다. 쇳물의 특성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면 에밀레종 같은 대규모 주물도 비교적 쉽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기술 발전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분야라도 과학적 합리성에 바탕을 둔 업무 처리는 매우 중요하다.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일은 밝은 미래를 가꾸는 유일한 길이다. “과학기술로 일자리를 늘리고, 국민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과학의 길을 열겠습니다. 아이들이 과학자를 꿈꾸는 나라다운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루겠습니다.” 이는 2017년 과학의 날 50주년을 맞아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발표한 성명서 내용이다. 그런데 올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과학의 날 기념사가 없었고 이는 내년 4월에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여당 의원 15인은 과학의 날을 8월 5일로 개정하자는 결의안을 올렸다.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를 이용해 세종대왕이 표준시를 반포한 날을 기념하자는 것이다. 600년 전 조선 표준시가 약 60년 전 대한민국 과학기술처보다 우리 민족의 삶을 더 크게 바꾸었을까? 게다가 물시계는 금속활자처럼 우리가 세계 최초로 발명한 것도 아니다. 이것도 현 정부가 끊임없이 추진해 온 적폐청산 작업일지 모르지만, 느닷없는 결의안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여하튼 모든 일에서 우리 정치인들이 좀 더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면 좋겠다. 4월은 과학의 달이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