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딕스 ‘신문기자 실비아 폰 하르덴의 초상’, 1926년.
“나는 당신을 그려야만 합니다! 반드시 그려야 해요!” 1926년의 어느 날, 베를린 시내를 걷던 한 여성에게 오토 딕스가 다가와 다짜고짜 했던 말이다. 여성의 이름은 실비아 폰 하르덴. 32세의 독일 신문기자이자 시인이었다. 당시 촉망받던 화가 딕스는 왜 그녀를 그토록 그리고자 했던 걸까?
딕스는 전후 독일 사회의 광기와 혼란, 부패한 정치 현실을 객관적이고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던 화가다. 전쟁은 그의 삶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던 그는 전장에서 목격한 처참한 장면들을 그림의 중요한 주제로 삼았다. 초기엔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었는데, 불구가 된 참전용사들과 거리의 매춘부, 다양한 지식인들을 모델로 그렸다.
그중 신문기자를 그린 이 초상화가 가장 유명하다. 베를린의 카페 한구석, 둥근 테이블 앞에서 하르덴은 남자처럼 짧은 머리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검은 체크무늬의 빨간 원피스는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원통형이다. 단안경과 흡연, 니코틴으로 변색된 누런 이와 손가락 사이 얼룩 등은 일반적으로 남성성을 상징하는 장치들이다. 실제로도 그녀는 동료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술과 담배를 즐겼고, 외모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쁘게 글을 쓰느라 근시안까지 왔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직업이 기자인데도 테이블 위에는 노트 한 권 없이, 술잔과 담배, 성냥만 놓여 있다. 초점 잃은 퀭한 눈에 어둡고 짙은 화장과 찡그린 표정은 삶의 고단함과 어두운 정치적 상황을 암시한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