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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칸 차지 ‘갑질 주차’… 제재할 방법 없어 온라인 망신주기

입력 | 2021-04-22 03:00:00

이달초 고급 외제차 ‘민폐’ 소동후 “우리 아파트에도 있다” 잇단 고발
일부선 비상용 전기로 車충전까지…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도 속수무책
피해 주민들 주차사진 올려 ‘응징’… 갈등 깊어져, 법-제도 보완 시급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경차 전용 주차 공간’ 2칸을 차지하고 주차돼 있는 대형 외제차가 보인다(위쪽 사진). 또 다른 아파트단지 주차장에서도 주민이 주차선을 침범한 채 외제차를 세워뒀다(아래쪽 사진). 최근 이런 비양심적인 주차가 늘어나면서 주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독자 제공·인터넷 캡처

“기본도 안 된 주차, 민폐 차량.” “주차가 아니라 길막(길 막음).”

이달 초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의 온라인 카페에 한 주민의 차량 주차에 대한 불만 글이 올라왔다. 해당 차량은 수억 원에 이른다는 고급 외제차. 주민들이 올린 사진에서 이 차는 주차선 앞으로 툭 튀어나와 차량 통행로를 막거나 주차 공간 2칸을 차지하기도 했다.

얼마 전엔 차들이 드나드는 통로에다 버젓이 차를 세워 두고선 모른 척해서 다른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기도 했다. 주민 A 씨는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관리소에서 차주인인 주민에게 전화해 사정까지 했는데도 ‘못 빼주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며 황당해했다.

아파트 단지 등 공동주택의 주차장 등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주민 행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2칸 이상 차지한 ‘갑질 주차’가 이슈가 된 뒤 “우리 아파트에도 있다”며 비양심적 행위를 고발하는 글이나 사진들이 잇따랐다. 비양심 주차는 물론 쓰레기 투척 등 사례도 다양하지만, 이를 제재할 제도가 마땅치 않아 주민 갈등만 깊어지고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에 있는 A아파트는 ‘주차장 공용 전기 무단 사용’으로 시끄러웠다. 한 전기차 소유자가 충전소가 따로 설치돼 있는데도 소화전에 있는 비상용 전기를 끌어다 차를 충전했다고 한다. 관리소에서 여러 번 시정을 요구해도 듣지 않다가, 법적 대응을 통보하자 별다른 사과도 없이 무단 사용을 멈춘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은 계속 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제재할 관련법이나 제도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공동주택의 자동차 이동로와 주차장은 대부분 도로교통법 적용 범위인 ‘도로’에 해당하지 않는다. 얌체 주차로 길을 막거나 불편을 야기해도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기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주민 신고가 들어오면 일단 현장 출동은 하지만 강제할 방법은 없다”고 전했다.

공공기관에 분쟁 조정을 의뢰해도 해결은 난망하다. 서울이웃분쟁조정센터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주차 관련 상담은 모두 113건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정식 조정으로 신청된 건 13건이며, 완료는 3건밖에 없다.

피해 주민들이 온라인에 논란이 된 주차 사진들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뾰족한 수가 없다 보니 사회적 공분을 일으켜서라도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심정이다. 하지만 한 변호사는 “차량 번호가 노출되거나 욕설 댓글을 달면 역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국회도 이와 같은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지난달 18, 19일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의원과 박상혁 의원은 각각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차 질서 위반으로 불편을 겪은 입주자는 관리사무소 등에 질서 준수 권고를 요청할 수 있고, 관리사무소의 권고를 받은 입주자는 질서 준수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하지만 이 역시 강제성은 없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법이 정비될 때까지는 공동주택관리규약이나 자치위원회 등을 통해 규칙을 정하고, 위반할 경우 페널티를 주는 방식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천=김수현 newsoo@donga.com / 권기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