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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日의 인권침해 맞지만 ‘국가면제’ 인정하는 국제법 따라야”

입력 | 2021-04-22 03:00:00

[위안부 피해자 소송 각하]석달만에 정반대 판결 이유는




“일본이 자행한 반인도적 범죄행위이므로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1월 8일 판결)

“심각한 인권침해는 맞지만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국제관습법에 따라야 한다.”(4월 21일 판결)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3개월 사이 상반된 결론을 내놓았다. 일본이 전시 성노예제를 운영하는 반인권적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선 판단이 일치했지만 일본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재판부 간에 결론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 ‘국가면제’ 인정 여부 첨예하게 엇갈려

판결의 핵심 쟁점은 바로 ‘국가면제’라는 국제관습법상 원칙을 적용할지 여부다. 국가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 16명과 유족 등이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 결정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민성철)는 국가면제를 인정해 외국(外國)인 일본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페리니 판결’ 등을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2012년 ICJ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한 이탈리아 국적 루이지 페리니에 대해 “무력 분쟁 중 발생한 외국 국가기관의 행위는 국가면제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반면 올 1월 고 배춘희 강일출 할머니 등 12명이 제기한 첫 번째 소송에서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각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당시 부장판사 김정곤)의 판단은 달랐다.

이 재판부는 “한 국가가 반인권적 행위로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혔을 때도 재판에서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 경우 이 국가는 어떠한 국제인권조약을 위반해도 제재할 수 없고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가면제는 인권침해를 저지른 국가배상을 회피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형성된 이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2015 한일 합의 효력 두고도 판단 갈려

2015년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합의’에 대한 판단도 엇갈렸다. 청구를 각하한 재판부는 2015년 합의가 피해자의 대체적 권리 구제 수단이라고 봤다. 외교적 합의를 통해 일본이 출연한 자금으로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됐고 일부 피해자들이 현금을 받았으므로 일본이 이들의 권리를 구제했다는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이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겠다”고 했다가 입장을 바꿔 합의의 효력을 인정한 점도 재판부의 판단 근거가 됐다. 문 대통령은 올 1월 18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승소 판결이) 곤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한국 정부는 그 (위안부) 합의가 양국 간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 문제는 소송이 아닌 일본과의 외교적 교섭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1월 피해자 승소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2015년 합의는 헌법상 조약 체결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며, 합의가 나왔다고 해서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피해자들로선 이 소송이 손해를 배상받을 마지막 수단이라고 봤다.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이상희 변호사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미 국제법으로 자리 잡은 수많은 국제인권조약은 피해자의 실효적 권리 보장을 요구한다”며 “재판부는 국가면제에 대해서는 기존 국제법을 준수하면서 같은 국제법인 국제인권조약은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유엔 등 국제기구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인도에 반한 죄, 강제노동협약, 인신매매조약 등 6가지 국제인권조약을 위반했다고 지적해왔다.

박상준 speakup@donga.com·신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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