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아이돌 놀이 문화 열풍
“엔딩요정 파업”
지난 18일 SBS TV 음악방송 ‘인기가요’가 방송된 뒤, K팝 온라인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혔다. 그룹 ‘샤이니’가 ‘아틀란티스’ 활동을 끝내면서, 멤버 키 역시 ‘엔딩 요정’으로서 더 이상 활동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엔딩 요정’은 K팝 문화에서 파생된 용어다. 주로 아이돌 그룹의 음악 방송 무대에서, 마지막에 3초 안팎으로 클로즈업되는 멤버를 가리킨다. 무대를 막 끝낸 상태이기 때문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모습과 아련한 눈빛 등은 필수다.
키는 최근 ‘엔딩 요정’의 다변화된 모습을 촉발시킨 주인공이다. 지난 2월 샤이니의 정규 7집 타이틀곡 ‘돈트 콜 미’로 컴백 당시 한 음악방송 무대의 마지막 장면에 그가 잡히면서 시작됐다.
키 역시 이를 유머로 받아 발전시켰다. ‘돈트 콜 미’ 무대뿐만 아니라 샤이니의 후속곡 ‘아틀란티스’ 무대 엔딩에서 다양한 모습의 ‘엔딩 요정’을 선보였다. ‘곧 민호 나옴’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거나, 면봉으로 눈 밑을 다듬는 등 유쾌한 모습으로 멋있어야 한다는 ‘엔딩요정’의 엄숙 공식을 산산조각냈다.
이후 후배 아이돌 그룹들 사이에서 ‘엔딩 요정’이 일종의 놀이가 됐다.
그룹 ‘에이티즈’ 멤버 종호는 손으로 사과를 반쪽으로 쪼개, 베어 무는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그룹 ‘우주소녀’ 멤버 다원은 ‘나… 오늘 엔딩요정’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엔딩 요정을 자처했다.
이런 다양한 ‘엔딩 요정’ 모습은 K팝 팬들 사이에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코로나19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직접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종의 교감이 됐다.
최근 ‘엔딩 요정’ 열풍은 K팝 문화가 일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방증한다. K팝은 팬덤의 지지를 업고, 주류 문화에 진입했다. 팬들이 K팝의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어떤 놀이 문화로 받아들이냐에 따라 생명력이 유지된다.
중견 아이돌 제작사 관계자는 “처음 ‘엔딩 요정’ 짤을 촉발시킨 샤이니 키의 무대 장면은 어떻게 보면 실수일 수 있는데, K팝 팬덤이 무대를 소비하는 방식과 키의 자연스런 대처 능력이 맞물리면서 시너지를 냈다”면서 “K팝 문화가 일방적 교류가 아닌, 쌍방적 교류임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봤다.
K팝의 ‘엔딩 요정’ 장면은 순수예술에도 영향을 줬다. 소리꾼 김준수는 지난 17~18일 국립창극단 ‘절창’ 무대에서 소리를 끝낸 뒤, 숨을 거칠게 쉬는 K팝 아이돌의 ‘엔딩 요정’을 재현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번 엔딩 요정 열풍은 부진을 면치 못하던 음악방송에게도 흥행의 기회가 됐다. 현재 음악방송의 시청률은 1% 안팎에 머물고 있다. 유튜브 등을 비롯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지는 온라인에 밀려 아이돌들이 신곡을 내면 그냥 의례적으로 거쳐 가는 통로로 전락했다.
‘엔딩 요정’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공이 어느 정도 쌓인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 자연스런 모습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샤이니와 함께 2세대 아이돌을 대표하는 팀 중 하나인 그룹 ‘2PM’ 멤버 택연은 최근 소셜 미디어에 키의 ‘엔딩 요정’ 장면이 담긴 영상을 리트윗한 뒤 “컴백하면 해봐야지”라고 적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