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백신 스와프를) 미국과 진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밝힌 지 사흘 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요청을 사실상 거절하면서 백신 수급 문제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자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며 당분간 국내에 물량을 쏟아 붓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캐나다 등 인접국과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협의체)’ 참가국과는 백신 협력을 논의해왔다고 밝혔다. 백신을 국제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을 숨기지 않은 것. 이에 따라 백신 수급은 물론 정부의 미중 사이 ‘줄타기 외교’가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쿼드’와는 협력 의사 밝힌 美
문제는 청와대가 지금까지 미국의 줄기찬 쿼드 합류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온적으로 대처해왔다는 점이다. 정 장관은 전날 관훈토론회에서 미국과 백신 스와프를 하려면 쿼드에 가입해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 “미중갈등에서 우리 역할과 백신(협력)은 연관이 없다. 팬데믹 상황에서 양국 협력은 외교적 분야에서의 논의와는 별개”라고 했다. 다만 “분야에 따라서는 협력할 수 있다”고 했다. 외교부는 코로나19 방역이나 백신 분야에서는 쿼드 국가들과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이 백신 개발 기술을, 일본과 호주가 재정 지원을, 인도가 백신 대량 생산을 맡으며 쿼드 내 협력이 견고해지는 상황에서 참가국도 아닌 한국이 낄 자리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 외교가에서 “백신 문제의 핵심은 한미 동맹에 대한 백악관의 인식”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 靑, 한미 정상회담 ‘백신 의제’ 위해 총력전
정부는 다음달 하순 경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는 만큼 그때까지 최대한 물밑 협상을 통해 백신 논의를 진척시키고, 양국 정상 대화 테이블에 백신 문제를 의제로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청와대는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글로벌 백신 공급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백신 물량의 추가 확보와 신속한 도입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에 앞서 미국을 찾았던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행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스가 총리는 방미에서 앨버트 블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 통화해 5000만 회분의 백신 공급을 약속 받은 바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우처럼 미 행정부가 직접 발을 담그지 않으면서도 기업에서 결정하는 형태로 만드는 접근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 정부를 직접적으로 끌어들이기 보다는 비공개로 물밑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