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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슈퍼 소동’ 일으킨 슈퍼리그

입력 | 2021-04-23 03:00:00


잉글랜드 축구팬이 슈퍼리그에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던 토트넘 구단 앞에서 ‘팬들에게 권력을’이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슈퍼리그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런던=AP 뉴시스

이원홍 전문기자

‘제국에 대한 반란.’

최근 대소동을 일으킨 유럽축구 ‘슈퍼리그’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미국계 투자은행 JP모건이 돈을 대고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의 빅 클럽들이 따로 모여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려던 구상이었다. 이는 그동안 세계 축구계와 유럽 축구계를 이끌었던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이라는 제국에 대한 도전으로 비쳤다.

그동안 FIFA는 월드컵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대항전을, UEFA는 챔피언스리그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클럽대항전을 운영하며 축구계를 이끌었다. 특히 유럽 축구는 뜨거운 인기 속에 성장을 계속했다. 글로벌 통계분석 사이트 스타티스타(statista.com)에 따르면 유럽 프로축구 시장 규모는 2006∼2007시즌 136억 유로(약 18조2797억 원)에서 2018∼2019시즌 289억 유로(약 38조8444억 원)로 성장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의 왕족 자본들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호화 군단 맨체스터 시티 및 프랑스 리그의 파리 생제르맹(PSG)을 인수하는 등 유럽축구 열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런 시장에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중동 자본들은 기존 체제에 편입되어 새로운 구성원이 되려고 했던 반면에 JP모건은 UEFA의 간섭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차이다.

UEFA는 FIFA의 산하단체다. 이익공동체인 FIFA와 UEFA는 함께 슈퍼리그 출범을 적극 저지했다. 이들에게는 독점 시장을 나눠주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FIFA와 UEFA는 월드컵 등에 슈퍼리그 참가 선수들의 출전을 금지하는 초강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결국 슈퍼리그는 참가하기로 했던 팀들이 대거 빠지면서 흐지부지됐다. 반란은 무산됐다.

하지만 이게 다일까. FIFA와 UEFA의 출전 금지 조치가 효력을 지니는지는 법적으로 따져 봐야 한다. FIFA와 UEFA의 협박만으로는 슈퍼리그를 막기에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작동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팬심’이었다.

슈퍼리그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이상 스페인),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토트넘(이상 잉글랜드), 유벤투스, 인터밀란(이상 이탈리아) 등 20개 팀으로 리그를 운영할 예정이었다. 핵심 멤버 15개 팀은 탈락 없이 고정으로 참여시키려 했다.

바로 이 부분이 팬들을 자극했다. 유럽축구팀(클럽)들은 도시를 연고로 한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많은 축구팀은 노동자부터 상인, 회사원 등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각계각층과 오랜 시간 동안 깊은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시간 속에 축적된 시민과 축구팀 사이의 이러한 강력한 유대감은 왜 유럽 클럽 대항전이 그토록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지를 설명하는 밑바탕이다.

슈퍼리그 창설자들은 유명 팀들끼리만 경기를 치르면 흥행이 더 잘될 거라고 계산했지만 오산이었다. 슈퍼리그가 15개 팀을 고정 멤버로 확정하는 순간 여기서 소외된 절대 다수 팬들을 적으로 돌렸다. 팬들은 성공은 물론이고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뛸 수 있는 열린 무대를 원하지 자신의 팀은 소외된 채 다른 팀들만의 잔치가 되는 무대를 원하지 않는다. 슈퍼리그는 이러한 팬심을 무시한 것으로 여겨졌다. 여기서 촉발된 팬들의 분노가 슈퍼리그 참가 팀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고 이를 견디지 못한 팀들이 탈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는 팀과 팬들 사이의 정서적 유대관계가 얼마나 중요하고 강력한지를 보여줬다. 이는 장기적으로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팬과 팀이 함께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한다. 이를 위해서는 팬과 팀이 일체감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팬과 팀이 상호 존중하며 정서적 교류를 경험할 때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경기의 승패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느낌이 중요해진다. 이는 팀과 팬 사이를 연결하는 다양한 스포츠 및 문화행사를 필요로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팀은 단순한 체육단체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하나의 문화적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성적을 떠나 불황과 패배 속에서도 함께할 수 있는 팬들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국내 팀들에도 시사점을 주는 슈퍼리그 소동이었다.


이원홍 전문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