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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창덕]기술 진화가 불러온 후폭풍, 기업은 HR 고민에 빠졌다

입력 | 2021-04-24 03:00:00


김창덕 DBR교육컨벤션팀장

‘역량의 반감기(半減期)’. 경영학자나 기업 인사부문(HR) 담당자들이 주로 쓰는 용어라고 한다. 역량의 유효기간쯤으로 이해하면 쉽다. 반감기가 긴 직무역량을 가지면 경쟁력도 오래가지만 반대인 경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역량의 반감기는 사람에 따라, 경쟁 환경에 따라, 그리고 기술 발전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고유의 물리적 반감기를 가진 방사성 원소(元素)와는 다르다.

이 역량의 반감기가 최근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같은 신기술이 대거 등장하면서 과거의 전문성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어졌다. 최신 기술로 무장한 새파랗게 어린 후배가, 심지어 기술 자체가 ‘한때’ 전문가들을 대체한다. 석기시대를 주름잡던 뛰어난 석공들이 철기시대가 열리자 할 일이 없어진 격이랄까.

기업들은 난감하다. 특히 HR에 대한 고민이 깊다. 글로벌 리서치기관인 가트너는 올해 초 ‘2021년 HR 리더의 5가지 우선과제’라는 리포트를 냈다. 조사에 응한 60개국 800여 명의 HR 리더들은 첫째 과제로 ‘핵심 기술 및 역량 구축’(68%)을 꼽았다. 그런데 이를 선택한 리더들 중 36%는 ‘우리 직원들의 기술 격차 수준을 모른다’, 31%는 ‘발전하는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기 위한 해결책이 없다’고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지만 해낼 능력이 없다는 고백이다.

외부 인재 스카우트로는 한계가 있다. 쉽고 빠른 방법은 언제나 비용을 수반한다. 정보기술(IT) 부문 고급 인력, 이른바 ‘개발자’들의 몸값은 대기권을 벗어날 판이다. 영입은커녕 기껏 키운 인력을 역량의 반감기가 지나기 전 경쟁사에 뺏길까 노심초사하는 게 현실이다.

자체 교육도 과도기를 겪는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단기 집합교육은 언제 부활할지 점치기 어렵다. 몇몇 기업의 연수원 건물은 지난해부터 정부 지정 감염자 격리수용시설로 쓰이고 있다. 교육 예산과 조직은 자연스럽게 축소됐다. 온라인 교육으로 발 빠르게 전환한 곳도 기존 커리큘럼과 포맷을 전면 개편하느라 분주하다. 비대면(非對面) 환경의 특수성 때문에 ‘자기 주도 학습’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어서다.

그럼에도 HR의 역할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형태로 확장된다. 지난해 9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온라인 판에는 ‘미래의 21가지 HR 직무’라는 아티클이 게재됐다. 향후 5년 내 출현할 HR 직무로는 챗봇-인간 조력자, 재택근무 조력자, 제2인생 코치 등이 있다. 10년 내로는 웰빙 디렉터, 최고목적플래너, 가상현실(VR) 몰입 카운슬러 등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됐다. 아직 생소해 보이는 이들의 활약이 조직원들의 역량을, 나아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날이 머지않았다.

경기가 어려울 때는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의 최고경영자(CEO)가 다수 등장한다고 한다. 성장기에는 최고전략책임자(CSO)가 주목받는다. 지금은 글로벌 저성장 기조에 팬데믹까지 겹쳐 어느 때보다 조직문화와 인력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HBR가 내다본 것처럼 최고인사책임자(CHRO)가 CEO 레이스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을 목격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김창덕 DBR교육컨벤션팀장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