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대역전/찰스 굿하트,마노즈 프라단 지음·백우진 옮김/376쪽·2만 원·생각의힘
세계적 금융 석학인 ‘인구 대역전’ 저자 찰스 굿하트와 마노즈 프라단은 앞으로 30년 이내에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고 국가 간 장벽이 높아지면서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세계를 덮친 팬데믹은 국가주의를 강화시켜 노동이 가능한 젊은층의 이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실질 생산 감소 현상을 더 악화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세계적 고령화가 국제 경제에 미칠 영향을 세밀하게 분석한 책이 나왔다. 저자 찰스 굿하트는 영국 재무부와 영국은행에서 자문을 맡은 경제학자다. 경제지표를 정책 목표로 삼고 규제하기 시작하는 순간 해당 지표의 통계적 규칙성은 사라진다는 ‘굿하트의 법칙’을 주장했다. 마노즈 프라단은 모건스탠리에서 글로벌 이코노믹스팀을 이끌었다. 이들은 오랜 기간 연구한 결과를 다양한 통계와 함께 제시한다.
저자들이 전망하는 경제적 파장은 우선 실질생산의 감소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60세 이상 인구 비율은 향후 15년간 4%포인트 이상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가능인구 자체도 줄겠지만 늙고 병든 가족 간병에 무보수로 동원돼야 하는 젊은 노동력도 적지 않을 것이다. 기대수명이 연장되면서 치매나 파킨슨병 등을 앓는 노인인구가 늘고 있지만 이 분야의 의학 연구는 발전이 더딘 편이다.
노동 공급이 감소할 경우 실질임금은 증가하게 된다. 고령층에 대한 부양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더 강하게 요구할 공산이 크다. 이는 인플레이션에 추가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저자들은 전망한다.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요소만 있는 건 아니다.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늘고 있는 데다 노년층의 노동 참여율이 높여질 여지가 있어서다. 그러나 그 효과는 미미하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수십 년에 걸쳐 인간 수명이 지속적으로 연장되면서 노년층의 노동참여율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높아진 상태라는 것. 앞으로 더 높아질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인도, 아프리카 같은 신흥시장이 ‘제2의 중국’ 같은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인도는 세계 경제를 끌어올릴 만한 저력을 갖고 있지 못하고, 아프리카는 파편화된 경제와 정치 문제로 인해 발목을 잡혀 있기 때문이다.
명철한 분석과 현실 진단에 비해 대책은 조금 아쉽다. 저자들은 대안으로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국가들에 대해 통화정책 및 재정정책의 변화를 주문한다. 증세를 통해 복지예산을 늘리면 젊은층의 경제적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줄 수 있다는 논리다. 이를 위해 법인세 과세의 근거를 회사의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판매가 이뤄지는 곳으로 바꿔 조세회피 수단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 토지가격 상승을 세금으로 흡수하고, 탄소세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 4·7 재·보궐 지방선거에서 보듯 부동산세 등 증세는 ‘양날의 칼’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통화·재정정책을 결정하는 정치 리더십이 유권자의 표심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정치구조에선 쉽게 꺼내 들 수 없는 카드라는 얘기다. 하지만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이 사회·경제 체제에 끼치는 해악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