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의 政說] 전략적 투표 호남, 尹 맞설 카드는 호남 출신 與 후보뿐?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보루 호남에서 이상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당 지지율과 대선후보 지지율 간 괴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호남 유권자들의 판단이 바뀌면서 발생한 일이다.
尹, 제3지대 후보로 인식돼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동아DB]
호남지역 유권자들은 여전히 국민의힘에 마음을 주지 않고 있다. 리얼미터가 4월 5일부터 닷새간 YTN 의뢰로 전국 유권자 2514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의 호남지역 지지율은 17.3%로 민주당(48.5%)에 크게 뒤처졌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2.0%p). 윤 전 총장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과거 호남 구애, 즉 적극적인 서진정책(西進政策)을 펼쳤다. 지난해 8월 12일 위원장 직속으로 ‘호남특위’로 불린 국민통합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이레 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은 채 사과했다. 김 전 위원장의 호남 구애 행보는 이후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15일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잘못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내놨다. 올해 3월 24일 국립5·18민주묘지를 다시 찾아 참배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4월 8일 국민의힘을 떠난 후 두 가지 일에 집중하고 있다. 바로 옛 친이(친이명박)계, 친박(친박근혜)계 중진을 향한 공세와 윤 전 총장에 대한 구애다. 국민의힘 내 주류인 옛 친이계와 친박계는 그간 김 전 위원장의 행보에 반발을 보였다. 이들은 여전히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을뿐더러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인색한 평가를 내놓는다. 김 전 위원장은 반성하지 않는 국민의힘과 윤 전 총장을 분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4월 20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이 지금 정돈되지도 않은 곳에 불쑥 들어가려 하겠나. 지금 국민의힘에 들어가 흙탕물에서 같이 놀면 똑같은 사람이 된다. 백조가 오리 밭에 가면 오리가 돼버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의 주장을 호남 유권자들이 곧이곧대로 수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들도 김 전 위원장이 지금까지 내려온 정치적 판단이 대체로 정확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김 전 위원장과 호남 유권자의 판단이 일치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윤 전 총장이 김 전 위원장과 손잡지 않아도 호남 유권자의 판단은 유지될 공산이 크다.
윤석열 정치권 안착이 최대 변수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왼쪽)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 [동아DB]
윤석열×김종인 복식조를 호남에서 이길 수 있는 카드는 호남 출신 대선후보뿐이다. 민주당 이 전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 2명이 해당 요건을 충족한다. 이들 중 1명이 본선에 올라온다면 윤석열×김종인 복식조와 불꽃 튀는 접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정 전 총리는 4월 16일 총리직을 사퇴하며 대권 행보를 본격화했다. 그는 4월 2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대선 출마를) 고심하고 있다”며 “민주당 전당대회(5월 2일)가 끝나면 국민에게 보고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에 대해서는 “반사이익을 통해 얻은 지지율은 유효 기간이 길지 않다”고도 말했다.
국민의힘에도 기회가 있다. 다만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잘못에 대한 분명한 인정과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정적 태도 종식이 전제돼야 한다. 이후 윤 전 총장을 영입하거나 호남이 호응할 대선주자를 본선에 내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김 전 위원장 수준의 정치력을 국민의힘 차기 지도부가 발휘해야 한다. 내년 대선에서 윤석열×김종인 복식조가 형성할 태풍의 강도는 역대급일 것이다.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 · 정치학 박사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86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