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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상 최악의 수탈 진행… 황금알 거위의 배를 가르는 김정은 [주성하의 北카페]

입력 | 2021-04-25 09:00:00


지난달 중국의 대북(對北) 수출액이 1297만 달러(약 144억 8600만원)로 늘었다고 합니다. 2월에 3000달러로 사실상 무역거래가 없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숫자입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북중(北中) 무역이 본격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죠.

그런데 무역이라는 것은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합니다. 중국에서 무한정 사올 수만은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북한에서도 뭔가를 중국에 팔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오는 수출물품은 거의 없습니다.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무역을 금지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이미 모든 무역기관들에 1월말부터 남포항, 원산항, 해주항을 통한 무역을 진행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상태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수출을 못하고 있었던 것을 감안할 때 무역 재개 지시가 내려졌으면 엄청난 물동량이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크지 않은 상선 몇 척이 중국에 가긴 했지만 대부분 북한 무역선들이 지금 항구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면 기가 막힙니다. 지금 북한에선 수출업자들에 대한 무지막지한 강탈과 수탈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봐도 요즘처럼 이렇게 빼앗긴 전례는 찾기 어렵습니다.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24일 3면에서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주택) 건설 진행이 계획보다 빠르게 되고 있다며 선전 선동을 이어갔다. 신문은 살림집 건설에서 ‘’새로운 평양 속도‘’를 강조하며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고조기, 격변기를 상징하는 주되는 공격전선”이라고 선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최근 평양 5만 세대 건설 공사 등을 벌여놓고 돈줄이 막힌 김정은은 이제 팔을 걷어붙이고 내부 외화를 뜯어내기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그걸 위해 무역기관 압류, 세금 인상, 외화 장악이라는 3가지 조치들이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첫째, 김정은은 각 기관들이 갖고 있던 무역기관들을 빼앗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2월 김정은은 수십 년간 국가경제 위에 군림해온 특수기관의 행태에 대해 “혁명의 원수, 국가의 적” “반당적, 반국가적, 반인민적 행위”라며 “전면적인 전쟁을 벌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당권, 법권, 군권을 발동해 단호히 쳐 갈겨야한다”고도 했습니다.

최근 30여년 가까이 북한의 무역은 기관별로 진행됐습니다. 선군 정치를 표방한 김정은 체제에서 돈이 될 자원들을 수출하는 회사들은 대거 군부 소속 외화벌이 기관으로 편입됐습니다. 가령 총참모부 소속 외화벌이 기관, 군수공업부 소속 외화벌이 기관 등으로 분류가 되는 겁니다. 북한 전체 무역회사의 80% 정도가 군부 소속이라는 증언도 있습니다.

그런데 각 기관은 이번에 산하 회사들을 몽땅 국가에 내놓아야 합니다. 회사를 키울 때는 1전 한 푼 보태준 것이 없다가 커지니 잡아먹는 셈입니다.

각 기관들이 보유한 무역회사의 명의는 국가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회사들이 무역을 위해 보유했던 자산들도 눈을 뜨고 빼앗기게 됐습니다. 건물, 토지, 탄광, 자동차 등이 소유주가 바뀌게 됐습니다.

이렇게 갖고 있던 자산을 몽땅 강탈당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 부자들을 수탈하던 때와 흡사합니다. 그렇지만 반항도 못합니다. 반항하는 순간 혁명의 원수, 국가의 적으로 규정돼 총살되거나 수용소에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이 정도 수탈을 당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속출해야 하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북한에선 자살을 하게 되면 나라에 대한 반항으로 보고 가족들이 몽땅 추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자살자의 자식은 대학도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북한에선 목숨도 내 것이 아닙니다.

3일 오후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개풍군 마을에 새단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1.1.3/뉴스1 © News1

둘째 무역거래 세금이 갑자기 크게 오르고 납부 방법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엔 무역거래가 이뤄진 뒤에 당국에 수출입품 수수료와 정책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연말에 경영이익금과 함께 납부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1월 말에 무역 허가와 함께 새로 내려진 지시에 따르면 먼저 수출입품 신고서와 함께 품목별 수량에 따르는 수수료와 유통 금액의 12%에 이르는 정책지원금을 국가에 납부해야만 무역 승인을 해줍니다.

쉽게 말해 과거엔 한국처럼 1년 회계를 작성한 뒤 이윤의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바치면 됐는데, 이젠 무역을 진행하기 전에 먼저 돈을 내야 하는 겁니다. 걷는 세금도 유통 금액의 12%를 내야 합니다. 이윤의 12%가 아니라 거래대금의 12%입니다.

거기에 기존에 평균 5%로 했던 수수료도 10%로 올려놨습니다.

그래서 1000만 달러어치를 수출하려면 먼저 120만 달러의 정책지원금과 100만 달러의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분기별로 경영이익금을 또 납부해야 합니다.

1000만 달러를 수출하려면 약 250만 달러를 국가에 빼앗기는 셈인데, 이렇게 많이 뜯기고도 수출업자들에게 남는 것이 있기는 할까요. 세금이 없는 나라라고 자랑을 하더니, 사채업자처럼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비율의 세금을 받아내고 있는 셈입니다.

수출 상품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세금이 높아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작년까지 북한 무역업자들은 전 재산을 수출상품을 사는데 투자를 했습니다. 수출이 이뤄지면 연말에 세금을 내면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수수료를 두 배로 올려놓고 이와 함께 정책지원금까지 미리 물어야만 무역 승인을 해준다고 하니 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석탄을 비롯한 각종 수출품을 사놓고 국가의 수출허가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수출업자는 눈물을 흘리며 사채를 구하는데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수산물과 산열매 수출업자들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돈을 꾸어와 수출을 진행해야 합니다. 지체하면 갖고 있는 상품이 다 썩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겐 생사가 달린 일입니다.

이미 중국에 상품을 수출한 업자들도 아직 대금을 받지도 못했는데 당장 정책지원금과 수수료로 22%의 대금을 납부하라고 하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결국 또 사채업자들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젠 사채업자들에서도 돈을 빌리기 힘든 상황이 됐습니다. 북한 내부에 돈이 있어야 얼마나 있겠습니까.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 은행을 통하지 않으면 외화거래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강탈입니다.

북한 당국은 중국과 무역에 종사하는 무역업자들에게 거래대금을 반드시 국가 무역은행을 통해 주고 받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과거엔 국가 은행을 거치지 않아도 자금을 전문 중계해주는 업자들이 따로 있었는데, 이들을 화폐이관업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새 지시를 어기고 무역은행을 거치지 않고 업자들을 통해 환치기 수법으로 돈을 거래하는 경우 강력한 처벌을 내리게 돼 있습니다. 중국에서 현금을 들여오던 것도 지난해 11월 방역 규정을 핑계로 금지시켰습니다. 방역 규정 위반자는 군법에 의해 처벌을 하라는 지시가 하달됐기 때문에 환전상들은 까딱 잘못하면 모든 현금을 몰수당하고 총살되게 된 것입니다.

이미 사법기관들에는 화폐이관업자들에 대한 검거 지시가 얼마 전 떨어졌습니다. 검거 선풍을 피해 더러는 붙잡히고, 더러는 잠수를 탄 상황입니다. 북한에서 큰 돈을 움직이는 이관업자들은 사채업도 겸해서 하는데 이들이 잡히거나 숨어버리니 무역업자들이 돈을 빌릴 데가 없어진 것입니다.

만약 당국 의도대로 모든 외화거래가 무역은행을 통해 이뤄질 경우 북한 내부에서 유통되던 모든 달러나 위안화가 국가의 손아귀에 들게 됩니다. 국가 은행과 별개로 주민들 속에서 유통되는 외화의 규모가 파악되게 되는 겁니다. 북한 같은 곳에선 당국에 파악된 돈은 언젠가는 빼앗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돈이 많으면 언젠가는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벌였다고 잡혀가고 재산이 몰수되는 것입니다.

수출업자들은 지금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이미 수출품의 수출허가 신청을 작년 10월경에 모두 마쳤기 때문에 항에 가져다 놓은 물품을 다시 갖고 올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수출을 강행하려니 수출액수의 22%에 이르는 수수료와 정책지원금을 먼저 내야 합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몇 달 내로 수수료와 정책지원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업자들에 한해서 수출품을 압수하겠다는 지시도 하달됐습니다. 다 빼앗길 판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지금 북한의 남포항의 경우 석탄수출업자들이 가져다 놓은 석탄이 산처럼 쌓여있지만 외국으로 빠지지 못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석탄 수출이 유엔의 대북 제재 금지 항목에 들었는데 어떻게 수출이 진행되고 있냐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는 시늉만 내다보니 북한의 석탄 수출은 제재 여부와 상관없이 암암리에 진행돼 왔습니다. 지난해엔 코로나19 때문에 못했을 뿐입니다. 이제부터는 또 무역회사들이 몰수되고, 이미 준비했던 무역은 늘어난 세금 때문에 못하게 된 것입니다.

북한이 방역 규정을 내걸고 외부에서 외화를 들여오지 말라고 지시를 했지만 한편으로 해외공관들과 해외 공작원들이 김정은에게 바치는 소위 ‘혁명자금’은 전혀 문제없이 들여오고 있습니다. 단둥에서 영사관 버스로 싣고 와 간단한 소독을 하고 바로 평양으로 올라갑니다.

이는 북한이 외화 반입 금지 지시가 사실은 방역 때문이 아니라 국가가 무역업자들의 돈을 다 파악하고 뜯어내기 위한 구실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기존의 무역업자들이 대거 파산하면 북한의 무역이 과연 잘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들의 자산을 몽땅 강탈하면 김정은이 잠깐은 행복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큰 손해가 될 것입니다. 내게 큰 이윤이 차례지지 않는 국가 일을 목숨 걸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죠.

북한은 지금까지 무역업자들의 활약 덕분에 내부 시장에서 돈이 돌아가며 유지돼 왔습니다. 그런데 경험과 거래 라인을 알고 있던 무역업자들이 대거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의 북한 상황을 보면 김정은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무역회사들에 몰아친 무자비한 약탈은 결국 지금 김정은의 상황이 그만큼 급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