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저소득층에게 빌려주기 위해 기존 다세대, 연립주택이나 원룸을 사들인 집들이다. 취지야 좋지만 낡고 주변 환경이 좋지 않은 곳이 많아 청년층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SH가 보유한 매입임대 1만9500여 채 중 24%가 빈 채로 남아 있었고, 2017∼2019년 사들인 6000채 중 19.5%엔 한 번도 입주자가 들어간 적이 없다.
▷반면 SH가 올해 초 저소득층을 위해 새로 지어 내놓은 임대주택 ‘서울리츠 행복주택’의 청약 경쟁률은 평균 86 대 1로 인기가 높았다. 15채가 공급된 은평구 ‘녹번e편한세상캐슬 39m² 청년형’에는 2652명이 몰렸다. 저렴한 임차료를 내고 서울 시내에 살고 싶은 청년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수천억 원 들여 사들인 집들을 폐가로 놔둘 순 없다. SH는 일부 빈집과 주변의 주택을 헐어 4∼5층짜리 다세대주택을 새로 짓는 ‘빈집 활용 민관결합형 자율주택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집을 헐어 생긴 땅에 동네 정원, 주차장, 텃밭을 조성하기도 한다.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 사업이 주거환경 정비사업으로 바뀌는 셈이다. 이렇게라도 빈집을 활용하는 게 방치하는 것보다는 낫다.
▷한국의 주택 보급률은 2019년 말 기준 104.8%다. 서울을 빼고는 주요 대도시 모두 100%를 넘는다. 단순 계산으로는 집이 남아돌아야 한다. 그런데도 집값이 폭등하는 건 수요자가 원하는 집이 항상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설과 주거 여건이 좋지 않은 집은 아무리 싸게 임대해도 외면당한다. 반면 인기 지역 공급을 규제로 막아놓으면 비싼 집값이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무시한 주택정책은 이렇게 성공하기 어렵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