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등 공동가치 외면으로 잇단 엇박자 변죽 울리는 대신 핵심 동맹이슈 협의해야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같은 날, 북한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 온 또 다른 워싱턴 외교 소식통에게서도 연락을 받았다. 문 대통령의 인터뷰 기사를 거론하며 “백악관이나 국무부 반응이 어떻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하지 않는 것은 실수”라고 경고했다는 부분을 짚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넘겨받으라고 훈수를 두는 듯한 문 대통령의 발언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내심 불쾌해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인터뷰가 워싱턴에서 꽤나 관심과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싸늘한 분위기는 단순히 표현 몇 개를 문제 삼는 차원을 넘어서는 분위기다. 앞서 문 대통령이 중국 보아오포럼에 참석해 ‘구동존이’를 이야기한 것, 바이든 대통령보다도 시진핑 국가주석과 먼저 통화한 것,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대만 코앞에 있는 중국 샤먼(廈門)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 응한 것 등을 미국은 예민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백신 스와프에 대해서는 한국 내에서조차 “스와프는 주고받는다는 건데 우리가 무엇을 줄 수 있느냐”는 냉소가 나온다. 우리는 막상 미국이 한국에 바라는 쿼드(Quad) 같은 대중(對中) 전선 동참, 5세대(5G) 협력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 대신 고육지책으로 반도체와 백신 거래에만 관심을 쏟는다. 냉혹한 외교 무대에서는 모든 것이 협상 카드라지만, 위험이나 부담을 감수하지 않은 채 손쉽게 줄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이것저것 상응 대가를 갖다 붙이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제안들이 결과적으로 한미 동맹을 계산적인 거래 관계로 만드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인권과 민주주의, 법의 지배 같은 공동의 가치를 앞세운 미국의 협력 요청에 응하지 않은 채 뒤늦게 물물교환 방식의 차선책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당국자들이 대놓고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지는 않는다. 갈등 소지가 있는 한국의 대응에 대한 입장을 물을 때면 “동맹의 의견을 존중하며 경청한다”는 식의 정제된 답변이 돌아온다. 그러나 외교적인 수사 밑에 깔린 미국의 속내를 읽어야 한다. 20년 가까이 워싱턴에서 활동해 온 한 외신 기자는 “미국은 겉으로는 친절하게 웃지만 뒤에서의 계산과 대응은 철저해서 때론 잔인하다고 느낄 때마저 있었다”고 했다.
우리가 미국에서 얻고자 하는 게 있다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고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 문 대통령이 미국을 상대할 때야말로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하루빨리 동맹관계의 핵심 이슈로 들어가는 게 어떤가.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