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정책 존재하지 않는 외교안보 눈앞 영향만 따지면 ‘포퓰리스트의 길’ 현실정치가 정책목표 좌우하지 말아야
우정엽 객원논설위원·세종연구소 미국센터장
수단이 합리적이라는 것과 목적이 합리적이냐는 것은 두 가지 다른 문제이다. 수단의 합리성은 정해진 목적을 달성하는 데 최소비용을 들여 최대효과를 거두는 정책을 택하면 되는 것이다. 목적의 합리성은 전혀 다른데, 그때의 합리성은 세상의 이치에 맞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도덕의 관념까지도 포함하게 된다. 착하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개념이 목적의 합리성에서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뺏으면서 정치적 선전효과를 거두려는 테러리스트의 행위는 수단 면에서는 합리적이지만 목적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 고난의 행군을 이야기하는 김정은 역시 독재권력 유지라는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겠다. 본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민들을 고된 삶으로 억압하지만, 그 목적은 어느 기준으로 보아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소수의 목적을 위해 다수가 수단으로 희생된다.
완벽한 정책이란 있을 수 없다. 수많은 상대들의 반응과 전략에 따라 변화 가능성이 큰 외교안보 영역에서는 더 그러하다. 여기에 주기적인 선거를 생각해야만 하는 정책결정자의 입장에서는 보다 단기적인 정치적 영향을 고려하게 된다. 이렇게 장기적 합리성보다 단기적 정치적 영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게 되면 포퓰리스트가 되고, 점점 수단의 합리성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목적이 이미 궤도를 달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단의 합리성보다 목적의 합리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도 목적과 수단 모두 합리적이지 못했다. 미얀마 군부의 그릇된 목적 설정은 폭력적 수단을 택하게 한다.
결국 수단의 합리성과 별개로 목적이 정해지는 방식 역시 중요하다. 외교정책에서 우리는 보통 목적을 국익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의 국익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수단의 합리성보다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목적이 잘못 설정되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의 폭을 매우 제한하게 된다.
우리의 국익은 국제사회의 질서 속에서 규정할 수 있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질서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 구도, 그리고 미국의 강경한 대중정책은 우리가 목적과 수단을 설정할 때 중요한 제약조건이 된다. 우리에게 이상적인 것은 미국과 중국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안보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겠으나, 그 근본적인 조건이 변화한 것이다. 냉전 이후 미국이 중국을 국제사회로 받아들이고자 했던 시대, 우리는 더 이상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우정엽 객원논설위원·세종연구소 미국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