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사진작가 육명심의 ‘예술가의 초상 시리즈―오지호’에 비친 작가의 모습. 지양진 기증·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호남 출신 오지호는 일본 유학 시절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다. 섬나라 일본은 습기가 많은 기후이다. 그래서 옻칠이 발달했고 수묵화도 먹이 짙게 스미는 선염(渲染)을 특징으로 한다. 반면 명랑하면서도 사계가 분명한 반도의 기후는 늘 밝다. 자연환경의 특성은 사람의 됨됨이는 물론이고 그곳에서 생성된 예술작품도 다르게 한다. 한국과 일본의 미술은 다를 수밖에 없다. 바로 ‘풍토론’이다. 오지호의 민족주의적 예술은 이러한 깨달음에서 태어났다.
오지호가 개성에서 교사로 머물던 시절 아내를 그린 ‘처의 상’. 흰색 저고리와 옥색 치마 등 1930년대 전형적 한국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지호의 ‘남향집’(1939년).
오지호는 광주화단의 대부로 우뚝 자리 잡았다. 그의 생애 후반부는 몇 가지 특기사항으로 기록된다. 무엇보다 6·25전쟁 시기에 지리산 빨치산 체험과 감옥생활을 했다는 점, 4·19혁명 당시 활동으로 군사 쿠데타 이후 감옥생활을 또 했다는 점 등이다. 현실과 거리를 두고 은사처럼 살 것 같지만 오지호에게서 지사(志士) 풍모를 읽게 한다. 그는 추상회화를 공격했고, 피카소의 존재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한글 전용에 반대하여 국한문 겸용을 강력하게 주장했으며 동시에 국어운동에 헌신하여 저술 작업을 하기도 했다. 국어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개인전을 열 정도였다. 화가의 또 다른 면모다. 오지호 앨범에 말을 타고 있는 사진이 있다. 승마는 오지호의 취미생활이었다. 호남화단의 대부는 이렇듯 독특한 장면들을 연출했다.
한국어의 특징 가운데 색깔 이름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예컨대 노랗다는 누렇다에서 노리끼리하다까지 다채롭다. 빨간 마후라, 하얀 손수건, 푸른 하늘 등. 명사에 ‘답게’를 붙이면 부사가 된다. 까맣게, 노랗게, 파랗게 등. 이렇듯 색채 명칭이 발달한 한국어에 없는 명사가 있다. 바로 블루(blue)와 그린(green)이다. 그린을 ‘녹색’이라는 한자로 쓰지만 순우리말은 찾을 수 없다. 블루와 그린은 모두 파랑이다. 참고로 현재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하양이 아니고 파랑이다. 설문조사 결과다. 그런데 ‘그린’에 해당하는 순수 한국어가 없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남향집’은 한국인의 색채의식을 생각하게 한다. 푸른 그림자, 바로 이것이 던져주는 질문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색깔일까.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도 다 있다. 빛은 섞으면 섞을수록 하얗게 되는데, 사람이 만든 물감은 섞으면 섞을수록 까맣게 된다. 사람의 손길이 아직은 자연의 완전함에는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