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개인의 목표와 그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인정된 수단 간의 괴리가 크면 ‘아노미’ 상태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일터와 가까운 곳에 집 한 채 갖고자 하는 목표와 그를 이룰 수 있는 수단 간의 괴리가 클수록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국내에선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벼락 거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그 정도로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얘깁니다. 이른바 ‘수저 담론’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계층 양극화를 반영합니다. 흙수저이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은수저도 되고 금수저도 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그런 20, 30대 젊은이들이 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에게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은 위원장은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가상화폐는 내재가치가 없으며 투기성이 강해 가상자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차익을 내면 세금을 걷을 것이며,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20, 30대 투자자들은 “정부가 계층 사다리를 무너뜨렸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은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이 올라와 하루 만에 12만 명 이상이 동의했습니다. 자신을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청년들이 왜 이런 상황에 내몰리게 됐는지를 생각해 보라며 2030세대에게는 기회조차 오지 못하게 각종 규제로 묶어 열심히 일해도 집 하나 가질 수 없는 처지라고 주장했습니다.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진 않으면서 세금을 부과한다는 방침도 모순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예상치 못한 반발 여론에 화들짝 놀란 분위기입니다. 뒤늦게나마 특위를 꾸리고 대책 마련에 나서면서 사태 수습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입니다.
가상화폐는 가능성과 위험성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투자 당사자들은 변동성이 큰 만큼 기회도 크다고 여기지만 일각에서는 한탕주의와 근로소득 경시 풍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정부가 양쪽의 목소리를 모두 듣고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어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