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빈소 마련...거리두기속 추모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오후 향년 90세의 나이로 선종한 가운데, 그의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에 28일 오전 7시부터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명동성당에는 오전부터 이미 취재진 수십여 명이 명동성당 곳곳에 자리했다. 11시30분 조문을 위해 늘어선 추모 행렬은 40여 명이었지만, 점심시간인 12시께부터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조문을 온 이들로 그 수가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던 2009년도에 비해 훨씬 적은 인원이 운집했는데, 서울대교구 측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을 고려해 소속 사제 등에게 조문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조문을 위한 줄은 명동성당 대성당 입구에서 끊겼고, 추모객들은 서너 명씩만 대성전 안으로 들어가 정 추기경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조문객은 장례 나흘째인 오는 30일 정 추기경 시신이 정식 관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유리관에 안치된 시신 가까이서 마지막 인사를 올릴 수 있다.
유리관 속 정 추기경은 모관을 쓰고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대성전 안엔 정 추기경이 1970년 주교품을 받으며 첫 사목 표어로 삼았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대성전 부근에는 조화도 없었다. 입구에는 “조화와 조의금은 받지 않습니다”고 적혀 있었다. 정 추기경 장례일정으로 평양교구신우회 원례미사는 취소됐다. 상설고해소 운영도 오는 1일 낮 12시까지 중단한다.
성당 밖으로는 이따금씩 천주교식 위령 기도인 연도(煉禱) 낭송이 들려 왔다. 장례 기간 명동성당에서는 고인을 위한 연도와 미사가 30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매 시각 거행된다. 연도와 미사 역시 코로나19 방역수칙 준수 아래 사제와 일반 신도 등 약 80명만 참여하는 가운데 진행된다.
조문객들은 각자 자신만의 기억으로 정 추기경을 추억했다.
이날 성당을 찾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경찰사목위원회 유치장부 대표인 김선심(65) 선교사는 정 추기경과의 인연을 회상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으로 있던 2000년에 경찰사목위원회를 창설했다.
김선심 선교사는 “(정진석 전 서울대교구) 주교님과 함께 방송에 나간 적도 있다. 주교님의 복숭아 같은 볼이 생각이 난다. 주교님은 추기경이 되시고도 의경 아이들 성년식 때 항상 참석해 주셨다. 언젠가는 가실 줄 알았지만 이렇게 되니까”라며 북받치는 마음에 말을 잇지 못 했다.
서울대교구 명동성당 소속 신자인 김모(65)씨는 “저녁에 소식을 듣고 바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추기경님이 남편 모교인 (서울) 중앙고 선배다. 100주년 기념 때 오셔서 뵌 적이 있다. 굉장히 인자하셨다. 당시만 해도 거동이 괜찮으셨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추기경님이 책을 계속 내셨다. 책 저술 활동으로 신자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많이 해 주셨다. 영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심혜정(57)씨는 “사제로서의 삶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왔다. 추기경님께서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마음으로 걸음했다”고 짧게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은 27일 오후 10시15분께 선종했다.
1931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 추기경은 발명가를 꿈꾸며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6·25 동란 이후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1961년에 사제품을, 1970년에 주교품을 받으며 최연소 주교가 됐다. 만 39세의 나이로 제2대 청주교구장에 임명돼 28년간 청주교구를 이끌었다. 1998년부터 12년간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했다.
2006년 3월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추기경에 서임됐다.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 은퇴했다. 이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주교관에서 머물며 저술활동을 이어 왔다.
장례는 천주교 의례에 맞춰 5일장으로 진행된다. 장례미사는 염 추기경의 주례로 5월1일 오전 10시에 봉헌된다. 이후 고인은 장지인 경기 용인 성직자묘역에 영면하게 된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