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김정일 생일 기념공연을 관람하는 도중 김정은과 이설주가 공연을 보고 만족한 듯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주성하 기자
모든 관객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공연을 관람하는 가운데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훈국가합창단과 주요 예술단체의 예술인들이 출연해 사망한 김정일을 찬양하는 공연을 진행했다.
김정은과 이설주가 공연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 날 북한 언론에는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는 여러 사진이 실렸다. 한국 언론은 이설주가 13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이날 경축공연에 참가했던 각 예술단체들을 대상으로 말씀 전달식이란 것이 열렸다. 여기에선 김정은이 16일 공연됐던 ‘그림자 요술’을 보고 아주 만족했으며 이를 치하했다는 소위 말씀이 전달됐다. 북한에선 마술을 요술이라고 한다. 그림자 요술이란 말 그대로 그림자를 활용해 하는 마술이다. 북한이 해외 장르를 본떠 이번에 처음 관련 작품을 만든 모양이다. 당일 공연 영상을 보니 남성 마술사가 강아지를 들고 나와 천 가리개를 활용해 여성과 바꾸는 등의 마술이 진행됐다.
말씀 전달식이 끝난 뒤 조선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 지휘자가 주변 지인들에게 농담조로 “별걸 다 치하한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의 시각으로 볼 때 그림자 마술은 아주 엉성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지휘자가 갑자기 체포됐다. 누군가 그가 한 말을 밀고했기 때문이다.
이틀 뒤 평양시내 예술인들에게 모두 모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김정은 시대에 이렇게 예술인들을 모이게 하면 좋은 일보단 안 좋은 일이 더 많다. 예술인들도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이번에 또 누가 죽을까 생각하며 버스에 올랐다.
조선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은 수석지휘자 겸 단장인 장룡식 중장 아래 5명 미만의 지휘자가 있다. 단장이 중장이니 지휘자는 소장 또는 대좌(대령) 계급일 것이다. 250명 규모의 합창단 편제가 이렇게 높은 것은 김정일이 공훈국가합창단을 ‘선군혁명의 나팔수’로 지칭하며 “선군정치의 기둥으로 인민군대를 내세운 것처럼 음악 정치에는 공훈합창단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1995년 12월부터 2011년 사망할 때까지 63회나 공연을 공식 관람했다. 분기에 한 번씩 찾은 셈이다.
이런 신임을 받던 합창단의 지휘자가 별생각 없이 한 말 한마디 때문에 부하들 앞에서 끔찍하게 죽었다. 처형은 AK-47 자동소총수 3명이 나와 10m 거리에서 각각 한 개 탄창(30발)을 모두 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90발을 맞은 시신은 들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됐으니 삽과 마대로 처리해 차로 싣고 갔다고 한다.
들은 내용은 상세하지만 차마 더 이상 자세히 쓰기가 끔찍하다. 그나마 이번 경우는 2013년 은하수관현악단 단원 등 예술인 10여 명을 처형할 때보단 덜 잔인했다. 그때는 임산부를 포함한 남녀 연예인들을 더 끔찍하게 죽이고, 지켜본 연예인들을 앞줄부터 일어나게 한 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시신 주변을 돌게 해 기절하는 사람과 오줌을 지리는 사람이 속출했다고 한다. 이런 것은 한 번만 봐도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김정은은 2017년 2월 22일 공훈국가합창단 창립 70주년 때 “합창단 예술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나의 핏방울과 살점처럼 애지중지 아끼고 사랑한다”고 했다. 이들이 김정은 말대로 핏방울이나 살점 같아서 그렇게 핏방울, 살점을 다 튀게 잔인하게 죽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