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시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3년 동안 신제품 연구
기술도 창작의 영역
좋은 시계란 무엇인가

“열정적으로 움직이면서도 편안함과 여유를 추구하는 도시 남성들에게 이 시계를 제안합니다.” 필리프 델로탈 에르메스 시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는 Q와의 인터뷰에서 H08에 대해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현대적인 남성성을 선보이는 제품”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델로탈 CD는 1986년 바쉐론 콘스탄틴의 디자이너를 시작으로 피아제, 파텍필립 등 다양한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를 거쳐 2008년 에르메스에 합류했다. 12년 동안 에르메스 시계 컬렉션을 가꾸며 하이엔드 시계 제조사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정관념을 뒤엎는 신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3년 동안 연구를 계속했다고 들었다. 디자인 착안점과 구체화 과정은…
―신제품으로 활동성을 겸한 가벼우면서도 자유로운 감성의 시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간의 흐름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바쁜 현대인을 위한 시계를 만들고자 했다. 동시에 상징적인 가치를 지닌 오브제로도 만들었다. H08은 이처럼 여러 가지 대비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사각 형태, 무브먼트, 광물과 신소재로 권위를 표현했고, 둥근 형태와 폰트, 재질들을 섞어 관능미를 선보인다. 그래서 감각적이고 가볍지만, 남성미가 넘친다. ‘날카롭지만 감각적인’ 시계라 할 수 있다.”
―타이포그래피, 화살촉 모양의 초침, 스포티한 우븐 스트랩 등 디테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에르메스 시계 H08(오렌지 러버 스트랩). 에르메스 제공
“H08에는 에르메스 ‘H1837 매뉴펙처 무브먼트’가 탑재됐다. 이 무브먼트는 아쏘 레흐 드라룬을 포함해 다른 다양한 에르메스 기계식 시계 라인에도 쓰인다. 에르메스 시계는 2012년 처음 자체 개발한 무브먼트를 소개한 이후, 지속적으로 다양한 무브먼트를 내놓고 있다. H1837 매뉴펙처 무브먼트는 2012년 첫선을 보인 이후 우리가 새로운 제품들에 도전하는 데 있어 매우 주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으며 이미 오랜 시간 신뢰성을 인정받았다.”
―작업 과정 중 가장 까다로운 공정은 무엇이었나?
“H08에 많은 새로운 디자인이 반영된 만큼, 이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기술적 해결책들을 찾는 것이 필수였다. 이는 에르메스 시계가 자체적으로 케이스와 다이얼 전문 제조 시설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했다. 전체적인 조화를 고려한 형태들과 더불어 소재를 다양하게 뒤섞는 작업도 까다로웠다. 미적 완성도와 기술력 사이에 타협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인데, 에르메스에서는 기술 역시 ‘창작의 영역’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러한 타협은 없다. 미적 완성도와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시계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피아제, 레거 르쿨트르, 파텍 필립 등 쟁쟁한 명품 브랜드를 거쳤다. 지금의 디자인 철학을 다지는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에르메스 시계 H08(블루 우븐 스트랩). 에르메스 제공
―당신이 생각하는 훌륭한 시계는 어떤 것인가?
“좋은 시계는 아름답고 특별하며, 가치를 공유하고, 그 안에 이야기가 있고, 감정을 일으키는 그런 오브제여야 한다. 에르메스 시계는 장인의
손끝에서 나와 착용하는 이와 교감하며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오브제를 만든다. 에르메스에 있어 시간도 하나의 오브제이다. 에르메스는 시간이 상징하는 긴박감을 초월하는 독특한 해석을 선보인다. 그저 측정하고 나누고 제어하는 시간보다는, 감동과 힐링을 자아내고 환상과 재미를 즐기는 다른 차원의 시간을 표현한다.
―시계로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주고 싶은 팁이 있다면….
필리프 델로탈 에르메스 시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에르메스 제공
델로탈 CD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당신의 시계 컬렉션을 소개해 달라”였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계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시계”라며 “시계 제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어린 나이에 이 시계를 물려받은 이후로 시계에 대한 열정은 점점 커졌고 지금도 계속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을 가지고 노는 것”이야말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시계는 때로 사치스럽고 값비산 패션 토템으로, 숭배의 대상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에르메스에서는 “시간도 하나의 오브제”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찰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오브제, 감동과 환상, 즐거움의 새로운 차원을 선사하는 오브제다. 장인의 손끝에서 빚어진 뒤 착용한 이와 평생을 교감하며 함께 하는 시계, 아름답고 특별하며 가치와 이야기가 담긴 ‘시간의 오브제’야말로 델로탈 CD가 이끄는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시계다. 가장 좋아하는 소장품으로 꼽은 오래된 시계 역시 그런 철학의 연장선에 있어보였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