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얼마나 지났을까,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 녀석은 “미안해. 어제 한잔 하고 잤는데 알람을 못 들었어. 나 너무 급해서 화장실 먼저 갈 테니까 휴지 좀 사다줘. 돈 여기, 아! 그리고 남는 돈은 복권 좀 사다 주고!” 배를 움켜잡고 뛰어가는 그 녀석. 아, 배 아프다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나는 그 녀석이 준 5000원을 받아 터미널 구석에 있는 마트에서 휴대용 휴지 200원짜리를 사고, 나머지는 즉석복권 9장을 사서 화장실로 갔다. 그 녀석은 휴지와 복권을 받더니 “야! 이거 4장은 너 가져. 심부름 값이다!” 나는 100원짜리 동전으로 열심히 복권을 긁었는데 모두 꽝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화장실 갔다 와서 출발하겠다던 그 녀석은 배가 너무 아프다며 우리끼리 출발하라는 말과 함께 후다닥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긁은 즉석복권이 1등에 당첨됐고, 그 당시 돈으로 2000만 원의 당첨금을 받게 됐다. 친구는 학교를 그만두고 자기 고향에 가서 제법 큰 슈퍼마켓을 인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1년 정도 지난 후, 문득 학교에 찾아와서 동기들한테 삼겹살이랑 노래방까지 한턱 크게 쏘고 군대를 간 그 녀석.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덕분에 소식을 다시 듣게 됐다. 꽤 큰 슈퍼마켓을 운영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고, 결혼도 일찍 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복권의 운이 오래가지 못한 것인지 요즘 건강도 나빠지고 생활도 어려워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심지어 SNS로 아는 사람들 여러 명에게 연락해서 돈을 빌려달라는 쪽지를 보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