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코로나 비운의 20학번
이들은 선배에겐 평범한 일상이었던 ‘과방’(학과 자치 공간) ‘학식’(학생식당)조차 생소하다. “엠티, 축제는 꿈도 안 꾼다. 동기들이랑 학식 가서 수다 떨고 싶다”는 소박한 꿈도 이루지 못했다. 2학년이 됐는데 캠퍼스는 두세 번 가본 게 전부. 동기 선배는 물론이고 올해 입학한 후배 ‘21학번’도 랜선 친구일 뿐이다.
20학번은 올해 더 큰 절망감을 느낀다. 1년만 참으면 벗어날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내년에 상황이 나아진다고 해도 현실과 취업 고민을 맞닥뜨리는 3학년이 된다. “대학생은 돼보지 못한 채, 고7로 졸업하는 셈”이라 자조하는 비운의 20학번들을 만나봤다.
코로나 직격탄… 비운의 2020학번 대학생들
29일 오전 김태림 씨가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김 씨는 지난해 대학에 입학했지만 세 학기째 비대면 수업이 이어져 실제로 등교한 건 두 번밖에 되지 않는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해 성신여대 20학번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한 김태림 씨(20).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학과의 학생 자치 공간인 과방이 그에겐 너무나 낯선 말이다. 대학에 입학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정작 학교 캠퍼스는 두 번밖에 가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입학식은 취소됐고, 신입생 ‘오티(OT·오리엔테이션)’는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김 씨는 “결국 1학년 때는 학교를 아예 못 갔고, 최근에야 실습수업 등을 이유로 등교했다”며 “캠퍼스를 제대로 거닐어 본 적도 없으니 과방이란 환상 속에서나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20학번’은 코로나19로 대학생활에 직격탄을 맞으며 ‘저주의 학번’이라 불렸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1년 정도만 참으면 나아질 거라는. 하지만 2학년이 된 그들은 여전히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혀 있다. 그 어떤 세대도 겪지 못한 ‘소포모어 징크스’(2년 차 혹은 두 번째에 부진을 겪는 경우)에 일부는 심각한 우울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가장 빛나야 할 시기에 가장 어두운 통로를 지나가고 있는 대학 2학년생들을 만나봤다.
○“대딩 2학년이 아니라 고딩 5학년”
“우리끼린 스스로를 ‘미개봉 중고 새내기’ 또는 ‘고딩(고교생을 일컫는 속어) 5학년’이라 불러요.”우스갯소리지만 별로 우습지가 않았다. 말투에서도 짙은 자조가 묻어났다. 이미 새내기를 지났지만 한 번도 새내기 생활을 해보지 못했다. 고교 때와 별 차이 없는 시간을 보낸 그들. 대학 2학년생들은 스스로가 불쌍했다.
김 씨는 대학에 가면 학회나 동아리 활동을 하며 다양한 만남과 경험을 얻길 바랐다. 당연히 그 역시 허락되지 않았다. 학교 선배라곤 ‘줌’을 통해 화면으로 얼굴 본 몇몇이 전부다. 지금 그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선배는 다섯 살 많은 친언니뿐이다.
원래 공모전은 대학 동기나 선후배와 함께 하기 마련. 하지만 김 씨는 고교 동창들과 준비하고 있다. 사실 가끔이라도 함께 밥을 먹는 친구 역시 그들뿐이다. 김 씨는 “인터넷에서 대학 선배가 직장에 들어간 높은 선배를 소개해 공모전 준비를 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너무 먼 옛날 얘기 같아 실감이 잘 안 난다”고 했다.
대학에서도 사귄 친구가 있긴 하다. 3명. 코로나19로 과에서 ‘짝꿍’으로 이어준 선배 1명과 후배 1명,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타(에브리타임)’에서 알게 된 동기 1명이다. 하지만 서로 얼굴을 본 건 두세 번이 전부다.
“후배가 실습수업 정보를 물어보는데 난감했어요. 하나도 모르는 내용이었어요. 동아리활동이나 대면수업도 해본 적이 없으니 뭘 일러줄 말도 없네요. 그래도 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선배는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선배에게 물어보고 답을 전해줬어요.”
4, 5월이면 대학마다 열린다는 축제도 20학번들에겐 공상에서나 존재한다. 숭실대 2학년인 유정민 씨는 대학에 가면 꼭 음악밴드 활동을 하고 싶었다. 대학 축제에서 자우림의 ‘매직 카펫 라이드’를 연주하길 오랫동안 소원했다. 하지만 꿈은 꿈으로 끝나버렸다.
코로나19로 힘겨운 상황에서도 유 씨는 입학 뒤 곧장 단과대 밴드에 가입했다. 어떻게든 꿈을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밴드는 ‘감염 확산 위험’에 5명 이상 모일 수가 없었다. 4명씩 합주하면 비는 파트 탓에 제대로 된 연습이 어려웠다. ‘줌 합주’도 시도해 봤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는 밴드 가입 1학기 만에 꿈을 접었다.
○갈라파고스 대학생… 정(情)이 뭔가요
대학 2년생들은 섬과 같은 존재였다. 그것도 멀리 떨어진 외딴섬. 가끔 오고가는 배들이 있긴 해도 홀로 바다에 둘러싸인 건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파편화된 대학생활은 학생들끼리 갈등이 벌어지는 악순환마저 낳고 있다.
최근 대학생 사이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인 ‘학점 인플레이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비대면 강의로만 이뤄지다 보니 성적 평가는 아무래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1, 2학년 때 쉽게 학점을 따지 못했던 선배들은 “불공정하다”며 불만을 쏟아낸다. 서울의 한 대학 2학년인 한모 씨(20)는 학내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가 엄청난 악플 세례에 시달렸다.
“별거 아니었거든요. 지난해 2학기 학점이 평점 4.3(4.5 만점)이었는데 중위권에 그쳤거든요. 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는데, 거센 성토가 이어졌어요. ‘코로나 덕에 좋은 성적 받고 배가 불렀다’ ‘혜택 입어놓고 징징거리지 마라’ 등등. 얼굴도 모르긴 해도 학교 선배들인데….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선배들도 ‘코로나 학번’들이 편하지는 않다. 같은 학교 4학년인 박모 씨(22)는 “코로나 피해는 다 같이 입었는데 20, 21학번만 학점 프리미엄을 누리는 게 형평성에 어긋나는 건 사실”이라며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는 후배들인지라 살갑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차피 취업시장에선 모두 다 경쟁자라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년 넘게 대학을 다녔지만 제대로 가본 적도 없는 20학번. 당연히 자기 학교에 대한 애착도 크지 않다. 그렇다 보니 20학번 중에는 ‘반수’(대학을 다니며 재수 등 입시 준비)를 선택하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 기계공학과 2학년인 이모 씨(20)도 고민 끝에 6월부터 반수를 시작했다.
“1학년 때 계속되는 녹화 강의에 지쳐가다 보니 게임 등에만 빠지고 낮밤이 바뀐 생활을 하는 친구가 많아요. 저도 엇비슷했죠.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으면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요즘 동네 독서실을 끊어서 다시 수능 준비를 하는데 훨씬 값진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에요. 이것저것 다 싫다며 군대에 가버린 친구들도 꽤 돼요.”
20학번들은 또 다른 걱정도 앞선다. 이대로 가다간 코로나가 끝난 뒤에도 ‘고딩 6학년’ ‘고딩 7학년’으로 지내다 대학을 졸업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자칫하면 그들에게 대학은 평생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학교에 가본 적이 거의 없죠. 교수님이나 선배들도 ‘실물로’ 본 적이 없네요. 낯설다 보니 진로 상담을 받아보겠다는 생각도 못해봤어요. 벌써 2학년이긴 한데, 한 번도 포장을 뜯어본 적이 없긴 21학번과 마찬가지잖아요. 이대로 한번 펼쳐보지도 못한 채 대학생활이 끝날 수도 있고요. ‘미개봉 중고 새내기’란 말이 얼마나 슬픈 농담인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실 거예요.”(건국대 2학년 이모 씨)
유채연 기자 ycy@donga.com·조응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