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되는 한국귀화 국가대표들
강동웅 스포츠부 기자
국내 첫 여자프로농구 귀화 선수인 김한별(35·삼성생명)이 2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밝힌 도쿄 올림픽 출전 소감이다. 지난달 대한민국농구협회는 도쿄 올림픽에 참가할 여자 대표팀 최종 엔트리 12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2011년 미국에서 귀화한 김한별의 이름도 올랐다. 3월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생명 우승을 이끈 뒤 미국에서 쉬고 있는 김한별은 “생애 첫 올림픽에 나도, 가족도 모두 신이 나 있다”며 웃었다.
한국 첫 귀화 마라토너 오주한(케냐명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33·청양군청)도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메달을 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케냐에서 올림픽 대비를 하고 있는 오주한은 “한국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참가할 기회를 줘 정말 감사하다. 한국 국민들에게 꼭 메달을 선물하고 싶다”고 밝혔다.》
○ 눈앞의 성적에만 급급하다 관리 실종
법무부에 따르면 2011년 ‘체육 분야 우수인재 특별귀화’ 제도가 도입된 이래 특별귀화로 한국인이 된 선수는 총 27명이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둔 2015∼2017년에 특별귀화 선수가 15명으로 유독 많았다. 하지만 당시 17명의 한국인 메달리스트 중 귀화 선수는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귀화 선수의 마지막 메달은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공상정(대만·2011년 귀화)에 멈춰 있다.
평창 올림픽이 끝나고 귀화 선수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아이스하키는 가장 많은 선수(11명)가 귀화했던 종목이었다. 하지만 맷 달튼(캐나다·안양 한라) 등 3명의 남자 선수를 제외한 8명이 한국을 떠났다. 브락 라던스키와 마이클 스위프트(이상 캐나다), 마이크 테스트위드(미국)는 은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이언 영(캐나다)은 소재조차 불분명하다. 랜디 희수 그리핀(미국)과 대넬 임, 캐롤라인 박(이상 캐나다)은 학업 등 개인 사유를 들어 대표팀을 포기했고, 마리사 브랜트도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기광 국민대 체육학과 교수는 “귀화 선수들의 사후 관리를 위한 예산을 확보해서 국내에 적응해 살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며 “비인기 종목의 경우 시도체육회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해 전국체전을 열어주면 국민의 관심도 생기고 귀화 선수들의 직업이 보장되는 등 선순환이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 한국인으로 소속감 가지게 해야
2018년 특별귀화로 한국인이 된 프로농구 선수 라건아(KCC)는 지난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인종차별을 겪기도 했다. 당시 그는 “예전부터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받았지만 최근 아내와 딸을 공격하는 내용까지 늘어났다”며 “나와 가족 모두 한국 생활에 만족하며 한국을 사랑하지만,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힘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2016년 귀화한 아이스하키의 달튼은 여전히 팀에 남아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 중이다. ‘한라성’이라는 한국 이름도 얻은 그는 한국에 대한 소속감이 남다르다. 달튼은 “나는 소속팀과 국가대표 동료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에 남아 있는 이유는 한국을 대표하는 게 그 무엇보다 행복하기 때문”이라며 “한국 하키의 발전을 위해 내 모든 걸 쏟아부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 선수 귀화를 국가가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냉정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겨울스포츠 등 비인기 종목이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기는 어렵다.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모든 스포츠 종목을 지원하려다 보면 체육 산업 전반이 다 죽을 수도 있다”며 “평창 때처럼 국가나 협회가 나서서 선수들을 영입하기보다는 선수가 한국에서 용병으로 뛰다 가능성을 보고 자발적으로 원할 경우 귀화를 시켜주는 게 합리적”이라고 조언했다.
강동웅 스포츠부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