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2018년)은 2045년 가상현실(VR) 게임 ‘오아시스’를 매개로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들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요즘 떠들썩한 ‘메타버스’는 무언가를 초월한다는 의미의 메타와 현실 세상을 일컫는 유니버스를 합친 말이다. 즉 현실을 초월한 세상, 모호한 세상이 메타버스이다. 이 말은 소설에 가장 먼저 등장한다. 1992년 발표된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서 메타버스라 불리는 가상의 세상에 들어가기 위해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린다. 현실에서의 메타버스와 아바타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무렵 등장한 여러 인터넷 서비스 중 싸이월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미니홈피’ 덕분이다. ‘싸이월드’에서는 인터넷 속에 자신만의 방을 꾸밀 수 있었다. 예쁜 가구를 배치하거나 화사한 벽지로 장식한다. 거기에 인터넷에서의 자신인 아바타에도 마음에 드는 옷을 입히고, 현실에서는 차마 해보지 못했던 헤어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싸이월드에서만 통용되는 ‘도토리’라는 가상화폐를 구입했다. 투박한 침대는 도토리 몇 개만 줘도 살 수 있었지만, 화려한 가구는 꽤 많은 도토리가 필요하다.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케이크를 선물하거나 명절날 세뱃돈을 주지 않고, 도토리를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다.
기술이 발전하고 인터넷에 익숙해지면서 미니홈피와 같은 가상 세계도 발전을 거듭한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면 로봇인 주인공에게는 눈앞에 있는 상황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곧바로 보인다. 최근에는 로봇이 아니라도 비슷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도구가 소개되고 있다. 가령 자동차 앞유리에 속도를 비롯해서 내비게이션 정보를 비춰 주는 것 역시 터미네이터의 기술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구글은 2014년 ‘구글 글라스’라 이름 붙은 안경을 시장에 내놓는다. 구글 글라스는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을 이용한다. 증강현실은 실제로 존재하는 환경에 가상의 정보를 증강하여 덧입힌다. 그래서 가상의 것들이 원래의 환경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만화영화에서나 보던 포켓몬을 휴대전화로 잡는 ‘포켓몬GO’가 증강현실을 이용한 게임이다. 휴대전화의 카메라로 주변 공원을 비추면 벤치 위에 올라선 포켓몬이 보인다. 휴대전화 화면에 있는 도구를 던져서 포켓몬을 잡는다.
올해 신입생 입학식을 SK텔레콤의 ‘점프VR’ 플랫폼을 통해 가상공간에서 진행한 순천향대 입학식(위 사진).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용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는 ‘도토리’ 상품권. 사진 출처 SK텔레콤·동아일보DB
어린아이들도 닌텐도의 ‘동물의 숲’이나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에서 각자의 마을을 만들고 서로를 방문한다. 선물을 주고받고 가상의 공간에 모여 파티를 열기도 한다. 가상현실을 눈앞에 보여주는 안경, VR 헤드셋을 쓰면 마치 전쟁터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고, 우주정거장 내부를 둘러보는 체험도 소파에 앉아서 할 수 있다.
메타버스에는 증강현실과 빅데이터 등 여러 기술이 담겨 있다. 또한 많은 데이터를 전송하기 위한 통신 기술이 있고, ‘도토리’ 같은 거래를 돕는 블록체인 기술도 필요하다. 메타버스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이다. 그간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여 더디게 발전하기도 했다. 현실 세계에 익숙한 탓에 가상의 세상에 발 들이는 것을 주저한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의 꿈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휴대전화 헤드셋이 등장한 초기, 길 한가운데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을 보고 놀라곤 했다. 이제 메타버스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VR 헤드셋을 쓰고 홀로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