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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19개 그룹 지분 26조, 상속세가 15조… “韓세율 세계 최고 수준”

입력 | 2021-05-03 03:00:00

[기업 상속세 논란]한경연, 최고세율 60% 적용해 분석




자산 10조 원이 넘는 국내 19개 그룹 총수들이 보유한 약 26조 원 가치의 지분을 상속하려면 상속세만 최대 1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대주주라면 20% 할증이 붙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 때문이다. 재계에선 “세대교체 중인 한국 산업계에서 승계와 상속세 문제는 기업마다 풀기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합리적 수준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온다.

○ “지분가치 60%가 상속세로”

2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자산 총액 10조 원 이상인 34개 대기업집단 중 삼성, LG, 롯데처럼 상속이 완료됐거나 포스코, 농협처럼 총수가 없는 곳을 제외한 19개 그룹의 상속세 규모를 분석한 결과 카카오,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은 조 원 단위 상속세를 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28일 기준 각 그룹 동일인이 보유한 지분 가치에 대해 최대 60% 세율을 적용한 결과다.

19개 그룹 전체로는 총 주식 가치 약 25조6000억 원에 납부 세액이 14조9000억 원으로 분석됐다. 각각 인적 공제 최대 30억 원과 누진 공제액 4억6000만 원, 신고세액 공제율 3% 등이 모두 적용된 액수다.

가장 많은 상속세가 예상되는 곳은 카카오였다.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보유 지분 가치(7조654억 원)에 대한 상속세만 4조1102억 원으로 분석됐다. 다만 김 의장은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2위는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명예회장으로, 보유 지분 가치 5조7935억 원에 상속세 3조3699억 원이 책정됐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자동차(5.33%), 현대모비스(7.15%)의 개인 최대주주다. 장남인 정의선 회장은 그룹의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의 지분이 없기 때문에 재계에서는 상속세 재원 마련 및 순환출자 구조 해소 등을 위한 지배구조 개편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3위는 SK그룹으로 최태원 회장은 보유 지분 3조6427억 원에 상속세 2조1181억 원을 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어 현대중공업, 한국투자금융이 각각 8284억 원, 8003억 원의 상속세로 4, 5위를 차지했다.

이상호 한경연 경제정책팀장은 “해외 주요국은 최근 기업 경영권 승계를 보장해주기 위해 공제 제도를 확대하는 추세인데 한국은 지분 상속에 최대주주 할증 등으로 상속세를 더욱 매긴다. 합리적 상속세제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 세계 최고 상속세… 보완 필요

최근 상속세에 재계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의 상속세가 천문학적 금액인 12조 원 이상으로 책정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명목 상속세 비율은 전 세계적으로도 최상위 수준이다. 2일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국내 직계비속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인 50%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2위였다. 하지만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에 따라 최대 60% 세율이 적용되면 1위 일본(55%)을 넘어선다. 대기업 최대주주가 상속할 때에는 OECD 최고 수준으로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다.

경총은 “최대주주라면 지분 상속 시 세금을 20% 더 매기는 제도는 한국이 유일하다. 가업 상속 공제 대상도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일부로 한정돼 있어 대기업은 외국 기업에 비해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마다 상속세 재원 마련 등을 위한 기업 지배구조 개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CJ그룹은 지난해 올리브영 상장 전 자금유치(Pre IPO)에 나서며 이재현 CJ그룹 회장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17.97%) 등이 보유한 올리브영 지분의 일부를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상속 재원 마련 및 승계 자금으로 활용하기 위한 매각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세계 일가는 미리 증여해 세금을 분할해 내는 방법을 택했다. 지난해 9월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에게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일부 증여했다. 이에 정 부회장 남매는 60% 증여세율을 적용받아 총 2962억 원을 5년간 분할 납부하고 있다.

아예 최대주주 지위를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2017년 OCI 이우현 부회장이 부친인 고 이수영 회장 타계로 상속세 1900억 원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지분 일부를 팔고 3대 주주로 내려왔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재계에서는 기업의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해 상속세율을 OECD 평균 수준(25%)을 고려해 완화하거나 가업 승계 시 공제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 대기업은 상속세 분납 기간이 최대 5년이지만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최소 10년 이상 분납을 허용하고 있다. 한때 상속세율이 높았던 스웨덴은 이케아가 상속세 부담으로 해외 이전을 시도하는 등 부작용이 커지자 2005년 기업 승계에 대한 상속세를 폐지했다. 가족 기업이 많은 일본도 가업 승계 어려움이 커지자 2018년 특례조치를 시행해 2027년까지 한시적으로 증여세와 상속세 납세를 유예해주는 등 특례조치를 시행 중이다.

곽도영 now@donga.com·서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