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한 동아리 집단감염에 온라인 게시판에 비난 글 쏟아져
여정성 서울대 교육부총장은 지난달 11일 서울대 학생들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학생에 대한 비난을 멈춰달라고 호소하는 e메일을 보냈다.
여 부총장은 호소문에서 “확진 사실을 바로 학교에 알리고 협조해 준 학생들에 대해 익명의 게시판에서 근거 없는 비방과 부정적인 낙인이 가해지고 있다”면서 “확진자에 대한 개인정보의 유출이나 인신공격성 비난은 정당화할 수 없는 인권침해이자 위법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에서는 지난달 6일 재학생 1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된 후 이 학생이 소속된 골프 동아리를 중심으로 16명이 줄줄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서울대는 즉시 홈페이지를 통해 확진자 발생 사실과 함께 시간대별 동선 등을 공개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캠퍼스 내 대면수업이 확대되면서 서울대 등 여러 대학에서 ‘코로나 낙인찍기’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내 커뮤니티를 통해 확진자 또는 밀접 접촉자가 구체적으로 특정되고, 정보의 확산 속도가 빨라 심각한 피해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내 확진자에 무차별 비난… “코로나 낙인이 병보다 무섭다”
“제발 집에 가만히 좀 계세요. 동물들처럼 침 질질 흘리면서 돌아다니지 말고.”
확진 판정을 받거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했던 대학생들은 학내의 ‘코로나 낙인’으로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고려대 아이스하키 동아리 부원 A 씨는 지난해 11월 총 10여 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고려대 아이스하키 동아리 집단감염’ 확진자 중 한 명이다. A 씨는 “한두 다리 건너면 서로 전부 아는 게 대학 공간인 만큼 ‘어느 동아리에서 누가 확진됐다’는 이야기가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돌았다”고 했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훈련 중에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등 근거 없는 주장도 난무했다. A 씨는 하루아침에 ‘죄인’이 됐다. A 씨는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아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집단감염 동아리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아직 애쓰는 중이다”라며 착잡해했다.
연세대 재학생 B 씨는 지난해 11월 학교 친구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낙인이 찍혀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확진 직후 “이 시국에 왜 밥을 여럿이서 먹었느냐”는 등의 비난과 함께 당시 상황을 과장한 헛소문이 떠돌았다. B 씨는 “비난 여론이 워낙 거세다 보니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했다.
같은 달 연세대에서는 한 학생이 확진 판정을 받은 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부주의하게 모임을 갖게 된 것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생각 없는 행동으로 불편을 끼쳐 드리게 돼 정말 죄송하다”며 공개 사과했다. 올해 3월 서강대에서도 한 재학생이 확진 판정을 받은 뒤 “기숙사에 거주하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사과문을 올렸다. 이어 학내 여론의 압박을 느낀 그의 기숙사 룸메이트까지 코로나19 검사도 받기 전 자신의 사흘간 동선을 스스로 공개했다. 룸메이트는 이후 음성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7.8%가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과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특히 인간관계가 좁고 촘촘한 캠퍼스 내에서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문제가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확진자에 대한 ‘낙인찍기’가 방역에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서울대 여정성 부총장은 교내 학생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교내 확진자 공지는 확진자들의 협조가 있어야만 작성될 수 있다”면서 “(비난으로 인해) 추후 구성원들이 진단검사 자체를 꺼리거나 역학조사에도 제대로 임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어 더욱 우려된다”고 호소했다.
오승준 ohmygod@donga.com·김윤이 기자·김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