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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3년간 도박에 중독돼 살았다는 김정훈씨(가명·41)의 말이다. 김씨는 도박에 깊이 빠지게 된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스포츠 토토로 10만원 정도의 돈을 한 일본 야구팀에 걸었고 팀이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18만원이라는 돈을 딸 수 있었다. 그는 그때의 기억을 절대 잊지 못한다고 했다.
김씨는 “도박 중독자들은 누구나 ‘빅 윈’이라고 해서 크게 돈을 딴 기억이 있다”며 “중독자들끼리는 비유하자면 그게 첫 성관계랑 비슷할 정도로 강렬하다고까지 얘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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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경기 과천 렛츠런파크 예시장에서 경마가 무관중으로 실시됐다./뉴스1 © News1
도박으로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1분기 도박 상담 인원인 6355명은 2018년 전체 상담 인원의 절반을 넘는 수치다. 연도별 도박 상담 인원은 Δ2018년 1만1287건 Δ2019년 1만4929건 Δ2020년 1만6951건으로 증가해왔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비대면’ 온라인 도박 시장이 커졌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도박 관련 상담 인원은 2019년 1849명에서 2020년 1550명으로 오히려 줄었지만, 온라인 도박 관련 상담 인원은 1만1297명에서 1만4084명으로 급증했다.
실제 중독 포럼이 발표한 ‘코로나19 전후 음주, 온라인게임, 스마트폰, 도박, 음란물 등 중독성 행동변화 긴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1시간 이상 도박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중독포럼은 병원 교수 등이 참여한 중독 연구 네트워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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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18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4명(40.4%)이 암호화폐에 투자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투자하는 이유로 ‘월급만으로는 목돈 마련이 어려워서’(53%, 복수응답)뿐 아니라 ‘주변에서 많이 하고 있어서’(27.5%)‘, ’변동성이 심해 스릴이 있어서‘(13%)라고 답했다. 이렇듯 투자가 아닌 투기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이 주식·암호화폐 투자를 재테크 수단으로만 보고 가볍게 여긴다는 점도 아쉽다. 도박이 가치 있는 소유물을 걸고 불확실한 사건에 내기를 거는 행위라고 본다면, 주식이나 암호화폐 투기도 이같은 정의에 상당 부분 부합하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주식 투기같은 경우 도박으로 분류하고 있다. 주식보다 변동성이 높은 암호화폐 투기는 더욱 위험하다.
도박 중독은 사람들에게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의학적으로 질병으로 취급될 정도로 치명적이다. 사람이 도박에 중독되면, 사람의 뇌는 도박을 갈망하도록 점점 변한다. 도박으로 돈을 따면 뇌에서는 쾌락을 관장하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다량 분비되는데 이는 마약을 투약했을 때 나오는 양에 버금간다. 높은 도파민을 경험한 뇌는 계속 도박을 원하게 된다. 이것이 도박 중독을 극복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이유다.
이렇듯 뇌 변화까지 초래하는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이 매년 늘지만, 중독 예방과 치유에 쓰이는 ’중독예방치유부담금‘은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보여 우려도 나온다. 중독예방치유부담금은 사행산업 사업자의 매출액과 비례해서 나오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경마, 경정 등 합법 사행산업 사업자의 매출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코로나19로 도박 중독을 치유·예방하는 서비스가 위축되면서 중독자에게 원활하게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해왔다는 점도 아쉽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서비스가 위축되자 지난해 하반기에 화상 시스템을 도입해 비대면 상담을 진행해왔지만, 아직 비대면 서비스가 예방 교육에까지 확대되지 않은 상황이다. 센터는 올해 비대면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아무리 치료, 예방, 상담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하더라도 도박 중독자 자신이 중독을 인정하지 않고 숨기고 극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도박 중독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다.
황 예방부장은 “주변 지인들에게 본인의 도박중독 사실을 알려야 한다”며 “주변 지인들에게 앞으로 본인이 도박을 하려고 할 때 말려달라거나, 본인에게 절대 돈을 빌려주지 말라고 하는 등 추후 본인의 도박행위를 제한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주변에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2년간 치료와 상담 서비스를 받으면서 많은 중독자를 만났다는 김씨 역시 치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도박 중독자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도박 중독자 여부를 판단하는 질문에 스스로 솔직하게 답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홈페이지에는 “귀하는 도박에서 잃어도 크게 상관없는 금액 이상으로 도박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귀하는 도박에서 이전과 같은 흥분감을 느끼기 위해 더 많은 돈을 걸어야 했던 적이 있습니까”, “도박으로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다른 날 다시 도박을 한 적이 있습니까”와 같은 자가진단 질문이 게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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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중독자들이 도박을 끊기 위해 서로 모여서 조언하고 도박 중독 극복 과정을 공유하는 ’단도박 모임‘도 도움이 된다는 제안도 나온다. 김씨는 “도박 중독자들은 돈을 빌리기 위해 주변에 거짓말을 많이 하다 보니 친구가 별로 없어서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을 만한 곳이 없다”며 “중독자들끼리 서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조언을 해주는 과정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도박 중독으로 돈을 잃더라도 절대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주변인들이 너무 고통스럽고 같은 도박 중독 회복자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