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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추며 노래도 하는 ‘안무가’ 김재덕 “할아버지 돼서도 춤 추고 싶다”

입력 | 2021-05-03 14:02:00

‘다크니스 품바’. LG아트센터 제공


이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는 무대에서 줄곧 춤을 춰왔고, 직접 안무도 짠다. 춤 출 때 쓰는 음악 대부분을 직접 작사·작곡하며, 춤을 추면서 말도 하고 노래도 한다. 2장의 정규 앨범과 20여 곡의 싱글을 발표한 가수이기도 하다. 한때는 1년 간 꼬박 철학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자신이 ‘표현가’라고 불리길 원했던 그는 “다시 마음이 바뀌었다. 말, 노래도 결국 다 춤이자 안무였더라”라며 “그냥 안무가로 불러 달라”고 했다.

한국 현대 무용계의 독보적 아이콘 김재덕 안무가(37)가 대표작 ‘다크니스 품바’와 솔로작품 ‘시나위’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7일, 8일 이틀간 공연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차례 미뤄진 끝에 재성사된 무대다.

1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계속된 공연 취소로 이전처럼 작품에 몰입하기 쉽지 않았다. 갑자기 공연이 취소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매사에 긍정적인 저도 몇 시간동안 허무주의에 빠져 ‘멍 때린’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배고픔, 결핍을 몸으로 그린 ‘다크니스 품바’는 무대에 대한 그의 갈증과 허기를 표현하기에 제격일지 모른다. 작품엔 그가 2013년 창단한 ‘모던 테이블’의 남성 무용수 7명이 검은 정장을 입고 등장한다. 이들이 현대판 무당으로 변신해 표현하는 배고픔은 “학대와 멸시를 춤과 노래로 풀어내던 전통적인 품바 타령을 재해석”한 몸짓이다.

김재덕은 공연 중 마이크를 잡아 노래하고, 마치 불경을 외듯 알아들을 수 없는 지베리쉬(Gibberish·횡설수설 말하는 대사)도 한다. 그는 “가수 고 신해철 씨의 ‘모노크롬’ 앨범에서 ‘품바가 잘도 돈다’라는 구절이 한 번 나온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걸 듣고 나중에 뭘 하든 이 대목을 살려보겠다고 다짐했다”는 창작동기를 밝혔다. 그는 이 구절에 무한 변주를 주면서 작품 음악을 작곡했다. 그는 “다 잘 되라고 기원하는 내용이지만 솔직히 큰 의미는 없다. 모든 비언어적인 춤, 대사 등은 관객이 받아들이고 느끼기 나름”이라며 웃었다. 당초 25분 길이의 작품은 60분으로 확장하면서 서사와 구성을 갖췄다.

2006년 첫 선보인 ‘다크니스 품바’는 무용계에서 꽤 유의미한 역사를 써왔다. 2019년엔 25일 동안 총 30회 공연했다. 대부분 3~4일 공연이 최대인 무용계에선 이례적이었다. 그는 “당시 한 원로 무용가가 ‘존경스럽다’고 전화를 주셔 놀랐다”며 “다만 매일 무대에 섰던 단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부상위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장기공연은 최소 두 팀으로 나눠서 해야할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작품은 일찌감치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무용수가 동경하는 영국 ‘더플레이스’, 미국 ‘케네디센터’ 등에도 올랐다. 22개국 38개 도시에서 공연했다. “안무가로서 운 좋게도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작품을 인정받았다. 남이 만든 춤보다는 저만의 춤이 통했던 것 같다”고 했다.

‘시나위’는 김재덕 그 자체를 이해하기 좋은 작품이다. 즉흥적으로 알 수 없는 대사를 내뱉으며 격정적으로 움직인다. 그는 “큰 틀은 정해져있지만 작품 중 절반은 즉흥이다. 그때 그때 생각나는 걸 내뱉느라 ‘불가리 향수’ ‘전설의 용사 다간’이라는 말도 내뱉었다”고 했다. 그는 “우린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비언어적인 표현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그에게 예술이란 “레고처럼 뭔가 끼워 맞춰보고 섞어 무대에서 시험해 보고픈 놀이”에 가깝다. 남보다 뒤늦은 16세 때 무용을 시작했지만 “즐거워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노는 것을 그만두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재즈가수였던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김 안무가는 “인간 몸에서 나오는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 움직임이 춤이기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꿈은 소박하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단원들과 같이 춤추고 싶어요.”

김기윤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