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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개헌 여론 아베 때보다 더 높아져…中위협에 여론 변화

입력 | 2021-05-03 21:04:00


일본 평화헌법 개정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겼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물러나자 일본 국민들의 개헌 찬성 여론이 오히려 더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개헌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등장, 중국의 역내 위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분석했다.

평화헌법 시행 74주년 기념일(5월 3일)을 앞두고 아사히신문이 전국의 유권자 21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45%가 “헌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44%는 “바꿀 필요가 없다”고 했다. 1년 전 여론조사 때와 비교해 개헌에 찬성하는 비율이 2%포인트 올랐고, 반대하는 비율은 2%포인트 하락했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는 2014년 이후로 개헌 반대 여론이 항상 더 높았었는데, 올해는 역전됐다.

NHK, 요미우리신문, 마이니치신문이 헌법기념일을 앞두고 실시한 개헌 여론조사에서도 모두 찬성이 반대보다 더 높았다. 지난해와 비교해도 예외 없이 찬성 여론이 1~7%포인트 더 많아졌다. 특히 요미우리 조사에선 최근 몇 년 동안 찬반이 팽팽했지만 올해는 찬성 56%, 반대 40%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헌법 전문가인 이노우에 다케시(井上武史) 간사이학원대학 교수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국민들이 이동과 영업의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을 경험하고, 중국의 군사적 위협 또한 커진 상황에서 국민들이 ‘지금의 헌법으로 이런 문제들에 대응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 때 정부가 더 강력한 권한을 갖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진 것이다.

요미우리는 “이념적 색채가 옅은 스가 정권이 탄생하면서 스가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개헌에 대한 거부감이 약해졌다”며 아베에서 스가로 총리가 교체된 것도 개헌 여론 확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은 패전 후 1947년에 현행 헌법을 시행한 이후로 한 번도 헌법을 개정하지 않았다. 군대 보유 금지와 교전권 불인정 등을 명기한 헌법 9조로 인해 일본 헌법은 평화헌법으로 불렸다. 하지만 집권 자민당 등 보수 정치인들은 줄곧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아베 전 총리는 2017년 헌법기념일에 ‘2020년까지 개헌을 완수한다’는 로드맵까지 공개하며 개헌을 밀어붙였다. 특히 그는 헌법 9조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확히 밝히는 조항을 추가하고자 했다.

하지만 헌법 9조 개정에 대해선 여전히 국민적 거부감이 있다. 아사히 여론조사에서는 헌법 9조의 개정에 대해 “바꾸지 않는 편이 좋다”가 61%, “바꾸는 편이 좋다”가 30%였다. NHK와 요미우리 조사에서도 헌법 9조 개정에는 반대 여론이 더 높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자민당은 전쟁 포기 조항은 그대로 두되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 9조에 따로 명기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개헌 과정은 간단치 않다.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 각각 전체 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이후 국민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해야 하는데 현재 참의원에서 개헌파가 3분의 2를 넘지 못한 상태다. 스가 총리는 올해 가을로 예상되는 중의원 선거 때 개헌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며 보수층 결집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는 3일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민당의 공약으로 개헌을 내세우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 골자가 되는 몇 개의 중요 정책 중에 넣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