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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코로나 낙인

입력 | 2021-05-04 03:00:00


“안녕하세요. 공대 확진자입니다. 불편을 끼쳐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서울 A대학 게시판에 올라온 사과문이다. 학교 근처 식당에서 소모임을 가진 공대생 10여 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게시한 글이다. 방역 수칙을 어기지 않았고 5인 이상 집합 금지령이 내려지기 전이었지만 “이런 시기에 요란법석 떨다니” 같은 비난 글이 쇄도하자 고개를 숙인 것이다.

▷대면수업 확대로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대학가에 코로나 낙인찍기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환자가 발생하면 신상털이식 개인정보와 함께 “부끄러운 줄 알라”는 험한 글들이 올라온다. 동아리에서 감염자가 나오면 동아리 전체가 ‘×민폐 동아리’로 찍히기도 한다. 서울대 교육부총장은 최근 학생들에게 메일을 보내 “확진자에게 근거 없는 비방과 부정적 낙인을 가하는 건 인권침해이자 위법”이라며 낙인찍기 자제를 호소했다.

▷학교 밖 낙인찍기는 생계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2월부터 8개월간 코로나 완치 후 부당해고 등으로 퇴직한 사람은 1300명이 넘는다(국민건강보험공단). ‘나와 마주친 동료들이 서둘러 마스크를 쓰는 모습에 상처받았다’며 제 발로 나온 이들도 있다. 모 투자회사는 ‘코로나 확진자는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는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 감염병 피해자가 가해자로 찍히면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조사에서는 ‘코로나에 걸릴까 두렵다’(58.3%)는 사람들보다 ‘확진 후 비난받을 것이 두렵다’(68.3%)는 이들이 많았다.

▷감염병은 사람을 매개로 하는 질병이어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쉽다. 코로나 초기 정부가 효율적인 방역을 위해 세세한 개인정보와 동선을 공개하고 구상권 청구를 강조한 것도 감염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에 일조했다. 낙인찍기는 방역에 지장을 줄 뿐만 아니라 깊은 후유증을 남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감염자 절반 이상이 완치 1년이 지난 후에도 정신건강 문제에 시달렸으며 사회적 낙인을 높게 인지할수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위험도도 높았다.

▷A대학 공대생의 사과문에는 위로의 댓글도 달렸다. “사과할 일 아니에요. 운이 없었던 겁니다.” “당황했을 텐데 무사히 쾌차하세요.” 누군가 억울한 돌팔매질을 당할 때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법. 코로나 완치자들의 차별 실태를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도 필요하다. 코로나에 걸렸다 회복한 후 직장과 헬스클럽과 단골술집에서 쫓겨난 20대 전직 회사원의 말처럼 “완치 후 일상에 복귀했을 때 사람들이 밀쳐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완벽한 방역”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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