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과학만능주의 정치에 이용되는 과학 과학적 검증 필요한 논쟁 대신 이념 대립 몰두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경제의 몫 과학적 근거 바탕의 정책결정 구조개혁 나서야
최재욱 객원논설위원·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
국민을 위한 과학과 정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립과 분리의 대상이 아니다. 과학과 정치는 보완과 협력,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기능해야만 동반 상승효과(synergy)를 기대할 수 있다. 과학의 역할뿐만 아니라 과학적 불확실성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한 가운데 ‘합목적적인’ 정치와 과학의 역할과 기능을 실천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가 과학을 압도하거나 일부 과학자의 편협하고 경직된 ‘과학지상주의’에 안주한다면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만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치적 진영논리가 주도하거나 과학적 근거가 불분명한 섣부른 정책의 실패와 막대한 피해는 전적으로 국민과 경제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자 실험실에서의 과학적 실험은 장려하여야 하고 혹여 실패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지만, 국민과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섣부른 정책실험은 있어서는 안 될 이유다.
그러나 논쟁 과정에서 진실과 과학적 실체를 밝히기도 전에 여전히 사회적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 데다 정부와 과학계 그리고 사회는 진영논리와 이해관계에 따라 이를 정치도구화하거나 방치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정치와 사회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는 높아지고 불신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논쟁의 공론화 과정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사결정구조와 기준을 마련하는 것에도 소홀했다. 사회적 논쟁과 정책 이슈들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합리적 해결책조차 마땅히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래서는 대한민국 사회의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그리고 정부 부처 산하의 과학정책 관련 산하단체와 자문위원회 등이 활동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기술 전문가 단체의 역할과 기능은 매우 제한적이다. 정책 기획과 집행의 기술적 보좌와 자문 의견 청취 정도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책 집행을 위한 과학위원회’일 뿐 ‘정책 결정을 위한 과학’이 아니었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그간의 다양한 사회 정책 이슈에 대하여 이들 과학기술 전문가 그룹이 논의와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했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 새로이 신설, 임명한 청와대 ‘방역정책기획관’조차 정치적 편향성과 진영논리에 의해 임명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방역의 정치화’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과 정치의 뼈아픈 자성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과학계와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과 책무에 대한 공론화를 시작으로 과학과 정치가 적극적이고 참여적인 형태로 협력할 수 있는 정책 결정 구조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더 나아가 다양한 정책 결정과 분쟁 조정 체계를 개혁하고 근본적으로 인과관계에 따라 기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재욱 객원논설위원·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