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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유재동]우리가 알던 ‘엉클 조’가 아니다

입력 | 2021-05-04 03:00:00

온건 이미지 벗고 파이터로 변신한 바이든
일회성 부양 아닌 사회정책 대변혁 시도




유재동 뉴욕특파원

“그가 젊었다면, 당장 그의 아버지에게 아들의 신용카드를 빼앗으라고 했을 것이다.”

같은 공화당이지만 도널드 트럼프를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해온 밋 롬니 상원의원. 당내 중도파로 분류되는 그가 요즘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 서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천문학적인 공공투자 계획이 국가 재정을 탕진하고 있다며 지난달 28일 그의 의회 연설 후에도 쓴소리를 했다. 나랏돈을 동원해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바이든의 구상이 흥청망청 카드빚을 쌓아가는 젊은이들의 한심한 모습처럼 비쳐졌나 보다.

바이든 행정부는 올 초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팬데믹 대응을 위해 1조9000억 달러의 긴급 예산을 편성했다. 이어 공공인프라 투자를 명분으로 2조 달러를 추가하겠다고 하더니, 이날 의회에선 교육과 복지 확대를 위해 1조8000억 달러를 또 지출하겠다고 밝혔다.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공화당이 뒤집어졌다. 당내 1인자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인프라를 가장한 극좌파의 트로이 목마”라며 “세금만 엄청나게 올려서 일자리를 없애고 임금 상승을 지연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바이든은 극좌는커녕 온건하고 중도적인 정치인의 표상이었다. 36년간의 의회 경험으로 타협과 조정에 능숙하고,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면모에 ‘엉클 조’란 별명도 얻었다. 그랬던 그가 적어도 경제 정책에서만큼은 독한 파이터 기질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부분이 나랏돈을 대하는 방식이다. 국가 재정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마중물로 생각하지 않고, 양극화 등 오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본다. 그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국가경제위원장을 지낸 래리 서머스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 대담에서 “일시적인 경기 대책이 아니다. 사회 정책의 대변혁이 일어날 조짐”이라고 짚었다.

바이든의 ‘국가 대개조’ 프로젝트는 사실 이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그는 작년 말 경제팀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팬데믹으로 드러난 구조적인 불평등에 대처할 시기”라며 “(지금 추진하는 부양책은) 기껏해야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 후 취임 100일까지 그가 쏟아낸 지출 계획을 모두 합치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이런 과감한 재정 투입을 미국은 대공황 이래 해본 적이 없다. 오바마 행정부도 월가를 겨냥해 부자 증세를 밀어붙이긴 했지만, 적어도 “재정적자는 피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 정도는 갖고 있었다. 오랫동안 시장과 효율을 혁신의 원천으로 삼아온 미국 경제에서 ‘큰 정부’로의 전환은 여러모로 익숙지 않은 실험이다. 재원 마련을 위한 대규모 증세에서 오는 부작용, 인플레이션이나 자산버블 같은 후유증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승부사’ 바이든은 수십 년간 축적된 불평등과 아메리칸드림의 붕괴에 대처하는 게 더 우선이라고 봤다. 이번 의회 연설에서도 “낙수(trickle-down) 경제는 작동한 바 없다. 이제 바닥과 중간에서 성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경제 정책이 가진 자들의 이해만 대변하고 계층 상승을 위한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만 낳았다는 것이다. 달러를 무제한 찍어내 이념의 균형추를 왼쪽으로 옮기려는 이 시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가 오바마의 ‘시즌 2’가 아니라면 이에 맞춰 우리의 대응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유재동 뉴욕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