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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세일즈 시대[2030세상]

입력 | 2021-05-04 03:00:00


김지영 한화생명 신사업부문 마케터

“제 계정요?” 출판사 미팅 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공개해 줄 수 있느냐는 편집자님의 물음에 반문했다. 저자의 개인 SNS가 출판 마케팅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충분히 예상 가능했는데도 주춤했다.

꽤 오랜 기간 SNS 비공개를 고수해 왔다. 관심 받고 싶지 않아서는 아니다. 글을 쓰는 일은 그 자체로 관심을 갈구하는 일이다. 스스로를 문장으로써 풀어헤치고 읽어 주길, 공감해 주길 기다리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일간지 지면에 글을 쓴다는 것은 일정 부분 피할 수 없는 ‘관종력’을 내포한다. 보다 냉정히 짚어보건대 그 이유는, 관심 받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부정적인 관심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바꿔 말해 긍정적인 관심을 기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N잡’과 ‘부캐’ 시대다. 유튜브, SNS, 재능공유플랫폼 등 수익 채널이 다각화되고 복수의 아이덴티티로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특정 분야 ‘전문가’로 자리 잡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하나의 직업이나 역할이 아닌 하나의 ‘콘셉트’ 아래 엮인 여러 개의 역할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이다.

나아가 어딘지 점잖고 고상한 기존 개념과 달리, 최근에는 학벌도 회사도 자격증도 보장해 주지 않는 미래,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 ‘자아의 세일즈’를 자발적으로 하는 현실과 관련 있다. 물론 회사원,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 밥벌이 양식에 따라 그 발붙인 정도는 천차만별일 테지만 ‘밥그릇은 셀프’라는 대전제만은 유효한 듯하다.

소비자 없는 브랜드는 기호(記號)에 불과하다. 브랜딩은 대상의 실체에 기반해야 하는데, 일단 그럴듯한 실체를 만들어 내는 일부터가 어렵다. 그다음이 그 실체를 브랜드로 정성껏 포장해 소비자에게 알리고 판매하는 일이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지만 내 경우 더 큰 어려움은 후자에 있다. 스스로 단련하고 개선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알아봐 주길, 좋아해 주길 기대하는 마음이 힘든 것은 비단 연애에서뿐만이 아니다.

배우 류승수는 말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가수 이효리는 말했다. “조용히 살고 싶지만 잊혀지기는 싫다.” 얼핏 상반돼 보이나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돈은 많이 벌고 싶지만 공개되는 것은 두렵다. 유명해져 얻게 되는 결과에는 욕심이 나지만 그 과정에서 감수해야 하는 것들로부터는 자유롭고 싶다. 자기공개는 두렵지만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관심과 애정은 한편 위안이 된다. 현대의 ‘1인 브랜드’가 지닌 숙명일까. 유명해지고 싶지만 유명해지기 싫고, 관심 받기 싫지만 관심 받고 싶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책은 잘 팔렸으면 좋겠다. 조용히 살고 싶지만 존재감 없는 것은 싫다. 모순투성이다. ‘본캐’와 ‘부캐’를 분리할 줄 모르는 세련되지 못한 사람이라 영 자신은 없지만, 밥그릇은 셀프이니 조금 더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 기왕 팔기로 한 거, 책도 나도 잘 팔렸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게, 진짜 속마음이다.

김지영 한화생명 신사업부문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