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스스로 장르가 된 사나이 “무대를 놀이터 삼아 놉니다”

입력 | 2021-05-04 03:00:00

작사-작곡-춤-노래하는 ‘팔방미인’ 안무가 김재덕
전통 품바 재해석 ‘다크니스 품바’… 신해철 ‘모노크롬’ 앨범 듣고 작곡
英-美 등 22개국서 공연하며 인정… 한차례 미뤄졌던 무대 7, 8일 재개
즉흥 공연 ‘시나위’도 함께 선보여



무용 ‘다크니스 품바’에서 품바 타령에 맞춰 역동적 안무를 선보이는 김재덕 안무가. 그는 스스로 천재 스타일인 것 같으냐는 질문에 “기사에는 노력파로 나가는 게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LG아트센터 제공


이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여진다.

무대에서 줄곧 춤을 춰왔고, 안무를 짠다. 여기에 춤출 때 쓰는 음악 대부분을 직접 작사·작곡까지 한다. 2장의 정규 앨범과 20여 곡의 싱글을 발표한 가수이기도 하다. 한때는 1년간 꼬박 철학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자신이 ‘표현가’라고 불리길 원하는 그는 “다시 마음이 바뀌었다. 말, 노래도 결국 다 춤이자 안무였더라. 그냥 안무가로 불러 달라”고 한다.

한국 현대무용계의 독보적 아이콘 김재덕 안무가(37) 얘기다. 그가 대표작 ‘다크니스 품바’와 솔로 작품 ‘시나위’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7, 8일 이틀간 공연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차례 미뤄진 끝에 재성사된 무대다.

1일 서울 서초구 카페에서 만난 그는 “계속된 공연 취소로 이전처럼 작품에 몰입하기 쉽지 않았다”며 “갑자기 공연이 취소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매사에 긍정적인 나도 몇 시간 동안 허무주의에 빠져 멍때린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배고픔과 결핍을 몸으로 그린 ‘다크니스 품바’는 무대에 대한 그의 갈증과 허기를 표현하기에 제격일지 모른다. 작품엔 그가 2013년 창단한 ‘모던 테이블’의 남성 무용수 7명이 검은 정장을 입고 등장한다. 이들이 현대판 무당으로 변신해 표현하는 배고픔은 “학대와 멸시를 춤과 노래로 풀어내던 전통적인 품바 타령을 재해석한 몸짓”이다.

김재덕 안무가는 “춤은 세상을 이상적으로 그릴 수 있는 순수 질료여서 매력적이다”라고 했다. LG아트센터 제공

김재덕은 공연 중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고, 마치 불경을 외듯 알아들을 수 없는 지버리시(Gibberish·횡설수설 말하는 대사)도 한다. 그는 “가수 고 신해철의 ‘모노크롬’ 앨범에서 ‘품바가 잘도 돈다’라는 구절이 한 번 나온다. 고교 1학년 때 이걸 듣고 나중에 뭘 하든 이 대목을 살려보겠다고 다짐했다”고 창작 동기를 밝혔다. 그는 이 구절에 무한 변주를 주면서 작곡에 임했다. 그는 “다 잘되라고 기원하는 내용이지만 솔직히 큰 의미는 없다. 모든 비언어적인 춤, 대사는 관객이 받아들이고 느끼기 나름”이라며 웃었다. 당초 25분 길이의 작품은 60분으로 늘면서 풍성한 서사를 갖췄다.

2006년 처음 선보인 ‘다크니스 품바’는 무용계에서 화제가 됐다. 2019년 25일간 총 30회를 공연했다. 대부분 3, 4일 공연이 최대인 무용계에선 이례적이었다. 작품은 일찌감치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무용수가 동경하는 영국 ‘더플레이스’, 미국 ‘케네디센터’에도 올랐다. 22개국 38개 도시에서 공연했다. “안무가로서 운 좋게도 어린 나이에 작품을 인정받았다. 남이 만든 춤보다는 저만의 춤이 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시나위’는 김재덕 그 자체를 이해하기 좋은 작품이다. 즉흥적으로 알 수 없는 대사를 내뱉으며 격정적으로 움직인다. 그는 “큰 틀은 정해져 있지만 작품 중 절반은 즉흥이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걸 내뱉느라 ‘불가리 향수’ ‘전설의 용사 다간’이라는 말도 내뱉었다”고 했다.

그에게 예술이란 “레고처럼 뭔가 끼워 맞춰보고 섞어 무대에서 시험해 보고픈 놀이”에 가깝다. 남보다 뒤늦은 16세 때 무용을 시작했지만 “즐거워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노는 것을 그만두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재즈 가수였던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김 안무가는 “인간 몸에서 나오는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움직임이 춤이기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꿈은 소박하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단원들과 같이 춤추고 싶어요.” 전석 4만 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