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AP뉴시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44)이 유럽 통일을 꿈꿨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 사망 200주년 기념식에서 일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헌화하기로 하면서 밝힌 말이다.
프랑스 매체 BFMTV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5일 파리 시내 군사문화시설인 ‘앵발리드’에 있는 나폴레옹의 묘역에 헌화하기로 했다. 200주년 행사에 참석해 연설도 할 계획이다. 주간지 르푸앵은 “마크롱은 그간 나폴레옹에 대한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아 왔다”며 “이번 결정에는 의도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5월 백인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인종차별 반대운동과 과거 식민지 시대의 반성이 유럽으로도 확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나폴레옹 사망 200주년이 다가오면서 ‘추모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크롱 측은 “기념한다고 축하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명암을 모두 봐야 한다”고 나선 셈이다.
나폴레옹 이후 2017년 최연소 최고 지도자에 오른 마크롱은 당시 취임하면서 ‘강한 프랑스’를 외쳤다. 헌화 결정에는 젊고 강한 지도자란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령 코르시카섬 출신의 나폴레옹은 1804년 황제로 즉위한 후 프랑스를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만들었다. ‘국민 영웅’이었던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는 1900년대 들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좌파 진영을 중심으로 나폴레옹의 독재성, 자국민 600만 명을 희생시킨 전쟁광 등의 부정적 면이 조명됐다. 특히 1794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폐지된 노예제를 나폴레옹이 8년 만에 되살려 ‘인종주의자’ 딱지가 붙기도 했다.
‘강한 지도자’라는 찬사와 ‘인종주의자, 독재자’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 나폴레옹의 양면성 때문에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나폴레옹을 평가했다.
나폴레옹.
대통령 뿐 만이 아니다.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전 총리는 나폴레옹의 혁명정신을 조명한 책, 리오넬 조스핀 전 총리는 나폴레옹의 악행을 비판하는 책을 각각 출판했다. 내년 대선 후보 중 한명인 안 이달고 현 파리 시장은 나폴레옹이 부활시킨 노예제 재확산에 맞선 흑인 여성 설리티드의 이름을 딴 공원을 지난해 9월 파리 도심에 열기도 했다. 설리티드는 19세기 초 카리브해 지역 프랑스 영토 과들루프 섬에서 노예제 반대를 주장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마크롱 나폴레옹 합성 이미지. SNS 캡처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