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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인사이트]소급 논란에 멈춘 손실보상 입법… “稅감면 등 실질적 대책 급해”

입력 | 2021-05-05 03:00:00

기약 없는 자영업 피해보상




박성진 산업2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집합금지·영업제한 조치 등의 손실을 국가가 보상해주는 손실보상제 도입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소급적용 여부를 두고 정치권 내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다.

관련 논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조차 널을 뛰고 있다. 일부 초선 의원들은 지난해 8월 이후 생긴 피해까지 100% 소급 적용해 보상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올해 1월 당 지도부와 정부가 내놓은 ‘소급적용 불가론’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4·7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정치적 전환 국면을 맞이한 국민의힘 등 야당도 소급적용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제기됐던 포퓰리즘 논란은 사라졌다. 반면 정부는 재원이 한정돼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소급적용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손실보상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회는 공전을 거듭했다. 손실보상법은 4월 임시국회 처리가 무산된 데 이어 이달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다. 소급적용 여부가 정치 이슈로 부각하면서 촌각을 다투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피해보상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 정치적 논란으로 번진 손실보상제 법제화



손실보상제는 올해 1월 참여연대와 소상공인들이 헌법소원을 내면서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소상공인의 영업을 금지 또는 제한했으나 이에 대한 보상 규정이 법률에 없는 현 상황이 위헌이라는 것이다. 헌법 제23조 3항은 공공의 필요에 의해 재산권이 제한될 때 그에 대한 보상을 법률로 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손실보상제 관련 초기 논란은 주로 피해 ‘지원’과 손실 ‘보상’의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에 집중돼 있었다. ‘코로나19 방역조치에 따른 집합금지·영업제한 조치를 법으로 보상해야 하는 제약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점이 논의의 핵심이었다. 정부가 손실보상을 법제화하기로 하면서 이 논란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급적용 여부를 두고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정부는 일관되게 “손실보상제는 과거의 피해를 보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생길 수 있는 피해에 대한 대비책”이라고 했다. 반면 재·보궐선거를 앞둔 민주당 내에서 소급적용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당정은 1월 말 “소급적용은 없다”고 뜻을 모았다. 그 대신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을 정했다. ‘소급에 준하는 지원’이라는 의도를 담은 결정이었다.

당정 협의의 결과물은 법안으로 만들어졌다. 민주당 송갑석 의원이 2월 대표 발의한 ‘손실보상법’(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에는 법 공포 이후 발생된 손실부터 피해를 보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실상 정부안인 셈이다.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던 소급적용 논란은 지난달 선거 직후 다시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 내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소급적용 주장이 거세졌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소급적용 대신 4차 지원금 지급을 결정한 당 지도부의 오판이 선거 패배의 한 원인일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며 “대선을 1년 앞두고 또다시 같은 과오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고 했다.


○ “법 지키다 생긴 손실 보상해야” vs “재난지원금과 중복 우려”



소급적용을 둘러싼 찬반 논리는 팽팽한 상황이다. 찬성파의 핵심 이유는 헌법 정신 구현이다. 김남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변호사는 “방역에 적극 협조하고 있는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재산권과 생존권을 제한하는 규정인 감염예방법은 최소한의 손실보상도 규정하지 않고 있어 그 자체로 위헌”이라며 “과거의 위헌적 조치에 대한 보상 없이는 그 위헌성을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소급 적용에 찬성하는 여야 의원들도 비슷한 목소리다. 지난달 25일 민주당 민병덕, 국민의힘 최승재,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국회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헌법 제23조에 따라 보상의 기준이 되는 시점 역시 행정명령이 시작된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이들은 “소급적용을 하지 않으면 그간의 국가 책임을 개인이 떠맡으라고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반면 정부는 재난지원금과 중복될 우려가 있고 재원에 한계가 있다며 소급적용에 반대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현재까지 4차례에 걸쳐 총 26조 원 규모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손실보상 적용 대상 중 하나인 집합금지 업종의 경우 최대 115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재난지원금이 사실상 소급보상에 준하는 지원이었던 만큼 중복지원 문제가 불거질 경우 지원금 차감 또는 환수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소급 기준 등을 두고 논의가 길어지면 피해지원의 ‘골든타임’도 놓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랏빚도 걱정거리다.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해 총 6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이때 재원의 상당 부분을 적자국채로 조달했다. 올해 3월에도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9조9000억 원의 적자국채를 찍어 재원을 충당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적자국채 발행이 올해 100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본다. 손실보상제가 도입되면 이를 위한 별도의 추경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있다.


○ “임차료, 인건비 보조 등 실질 대책 필요”



손실보상 소급적용을 둘러싼 논란의 당사자들은 어떤 입장일까. 서울 송파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김모 씨(43)는 “손실보상제가 실시되고, 소급적용이 되더라도 그동안 입은 피해가 ‘도깨비 방망이’를 사용한 것처럼 원상 복구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전폭적으로 각종 공과금 및 세금 감면에 나서는 것이 돈 몇 푼 쥐여주는 것보다 현실적인 보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성남의 한 노래방 사장인 이모 씨(53·여)도 “손실보상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라면 당장 추가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든, 임차료 보조에 나서든, 무이자 대출을 하든 뭐라도 해야 한다”며 “다 망한 뒤에 보상 받으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라고 했다. 자영업자들은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실질적이면서도 신속한 지원을 원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대출 원리금 유예 조치 연장, 전기료 감면, 인건비 보조 등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검토하고 있는 ‘초저금리’ 대출 방안을 신속히 시행하고 고용지원금 확대, 임차료 지원 등 현재의 여건에서 즉각 실행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급 적용 범위 및 시점, 대상자 지정 과정에서의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할 때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이 발생돼 너무 많은 시간이 허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자영업자들의 고정비 지출 항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임차료와 인건비 지원 등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고 했다.


박성진 산업2부 기자 ps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