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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의 초상[간호섭의 패션 談談]〈53〉

입력 | 2021-05-05 03:00:00

로코코 패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로코코(Rococo)는 프랑스어로 ‘로카유(Rocaille)’가 어원이며 ‘조그마한 돌’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궁전의 정원을 장식했던 조개껍데기 형태의 인공적인 정원석에서 유래했습니다. 예술양식으로서의 로코코는 18세기 루이 15세 시대를 정점으로 풍미했던 미술, 건축, 공예를 아우르는 장식적인 양식을 의미합니다.

로코코는 바로크를 계승하고 있지만, 왕실 중심이라기보다는 귀족과 부르주아 중심의 예술양식입니다. 유희와 쾌락 추구에 몰입했던 당시 프랑스 귀족계급의 우아함과 연약함 그리고 부드러운 매력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 바로크가 추구했던 중후함과 권위보다는 아늑함과 개인의 감성을 중요시했죠. 따라서 큰 퍼레이드나 열병식보다는 살롱과 사교모임을 중심으로 로코코 양식이 전파되어 갔습니다. 어원처럼 조개껍데기의 올록볼록한 곡선 모양이 건축 내·외부 장식에, 커튼을 매단 봉 끝에, 찻잔 손잡이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면서 로코코 양식을 실제 몸으로 체험해 갔습니다.

이 살롱문화를 주도한 사람이 바로 마담 퐁파두르(사진)입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초상화를 남긴 그녀는 로코코 패션의 전도자였습니다. 지금처럼 패션 매거진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한 패션의 전파가 어려웠던 시대에 초상화는 패션에 대한 그녀의 영향력과 파급력을 상징했습니다. 프랑수아 부셰가 그린 그녀의 초상화는 로코코 패션, 아니 로코코 양식의 집약체입니다.

바로크 시대의 패션에서 짙은 버건디와 블루 색상의 벨벳이 쓰였다면 로코코 시대의 패션에서는 옐로, 핑크, 민트, 스카이블루 등 파스텔 색상의 새틴이나 태피터 직물이 사용되었습니다.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흡사 개나리꽃,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를 보는 듯합니다.

하지만 정식으로 왕과 혼인한 적이 없고, 귀족 출신도 아니었던 마담 퐁파두르의 영향력은 단지 우아하고 관능적인 패션 스타일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독서를 싫어했던 루이 15세를 위해 베르사유 궁전 안에 다락방 소극장을 지어 몰리에르 희곡을 공연하며 퐁파두르가 직접 출연도 하고, 배우 섭외와 무대 연출 그리고 장식까지 맡아 종합 예술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당대의 사상가인 루소, 볼테르 등과도 교류했으며, 루이 15세의 입맛을 장악하기 위해 프랑스 최고급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 지방의 와이너리를 선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보니 그녀의 거의 모든 초상화에서 책이나 악보가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닌 듯합니다. 조선시대 ‘황진이’가 우리에게 예인(藝人)으로 기억되듯 마담 퐁파두르는 단순히 로코코 시대의 여인이 아니라 예인의 초상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