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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공포를 버티려는 어부들의 몸짓[김창일의 갯마을 탐구]〈60〉

입력 | 2021-05-06 03:00:00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전국의 어촌을 다니며 수많은 종류의 배를 탔고, 일손을 거들기 위해 뱃일을 익혔다. 어민 생활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선원처럼 노동에 동참했다. 울산 제전마을에 10개월간 상주하며 해양 문화를 조사할 때 장어잡이 어선에서 투망과 양망하는 일을 자주 도왔다. 선장 눈에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했을 터. “그물에 발목 걸리면 죽어. 무조건 조심해야 해. 통발 더미가 무너지거나 그물이 배에 걸려도 손대면 절대 안 돼.” 조업 나갈 때면 선장으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던 말이다. 조업 횟수가 늘수록 잔소리는 줄었다. 뱃일이 익숙해지자 시시때때로 물고기 잡으러 나가자고 해서 도망 다닐 정도였다. 그렇게 10개월의 조사를 마치고 2016년 가을, 박물관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며칠 전 선장의 소식을 접했다. 지난달 조업 나갔다가 그물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였다. “그물에 발목 걸리면 죽어”라며 호통 치던 목소리가 한동안 귓전을 맴돌았다.

남해도의 해양 문화를 조사할 때다. 배 위에서 통발을 정리하는 어민과 이야기를 나눴다. 몇 주 전 조업에서 아내를 잃었다며 슬픔을 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항구로 들어갈 때 아내가 보이지 않아서 곧바로 뱃머리를 돌렸으나 찾을 수 없었단다. 할 줄 아는 게 뱃일밖에 없어서 다시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한다며 애써 참는 듯했지만 갑판 위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연평도에서 사계절을 상주할 때엔 꽃게잡이 닻 자망 선원이 양망기에 걸려 사망한 사고로 항구가 떠들썩했다. 한 주민은 매년 조업 중 이런 일이 발생한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강화도 포구에서 만난 어민은 닻 자망 어선 선주였다. 선장을 고용해 어로 활동을 했는데 조업 중 선장의 발이 그물에 걸리는 바람에 바다로 끌려가서 사망했다. 선주는 충격으로 닻 자망 어업을 중단하고, 안강망 어업으로 변경했다. 지금도 사고가 난 바다를 지날 때면 고수레를 하며 선장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어민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지만 동시에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공포의 공간이다. 그래서 선실에 명태와 명주실 등을 걸어두거나 선기(뱃기)를 달아 풍어와 무사 귀환을 염원한다. 우리네 어부들은 바다에서 주검을 발견하면 민간신앙 습속에 따라 시신의 왼쪽으로 배를 돌려서 수습했다. 주검을 발견하고 외면하면 재앙이 따르고, 거둬 주면 복이 들어와서 물고기를 많이 잡는다고 여겼다. 혹여 자신이 희생되더라도 다른 선원들이 거두어 주기를 바라는 염원이 투영된 믿음일지도 모른다. 거북이 그물에 걸려서 올라오면 대접하는 의미에서 막걸리를 먹이고 바다로 돌려보냈다. 용왕의 대리인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칼을 바다에 빠뜨리는 건 금기시됐다. 용왕을 향해 칼을 던지는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미신으로 치부될 행위들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일기예보가 없거나 부정확하던 시절, 바다는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공간이었다. 삶의 터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수히 많은 금기와 민간신앙은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바닷가 사람들의 몸부림이다. 물결은 하루에 두 번 밀려오고 밀려가기를 반복할 뿐이고, 버텨내려는 어민들의 몸짓은 반복될 것이다.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