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시대의 얼굴…’전
英초상화미술관 보유 78점 소개… 왕권 이미지 가득한 엘리자베스 1세
싱어송라이터 활동중인 에드 시런, 남녀 양성으로 산 ‘슈발리에 데옹’ 등
사회적 지위-자기표현 드러내고 삶의 의의 묻는 인물들 모습 선봬
25세에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는 궁정 내 세력 분파, 외세의 간섭 등을 우려해 결혼을 주저하다가 결국 단독 통치하기로 결정한다. 그의 초상화 속 화려한 옷과 보석은 가문 계승에 대한 의지와 강력한 왕권을 상징한다.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제공
셰익스피어, 다윈, 뉴턴, 비틀스, 데이비드 호크니….
500여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역사를 빛낸 인물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78점의 초상을 모은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 전문 미술관인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전시품이 국내에 소개되는 건 처음이다.
결혼을 거부하고 단독 통치를 한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는 권력자인 여왕을 신성한 존재로 부각하려는 의도가 담겼다. 이 작품은 1575년경 궁정과 대신들의 의뢰를 받아 궁정화가 니컬러스 힐리어드의 화실에서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왕이 쥐고 있는 붉은 장미는 가문을 상징하며, 불사조 모양의 보석은 ‘결혼하지 않은 여왕’을 뜻한다. 이는 엘리자베스 1세가 왕조를 계승해 지속시켜 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낸다.
모델이 되길 좋아했던 뉴턴이나 소설가 찰스 디킨스와 달리 찰스 다윈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초상화 속에서 정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다소 어색한 이유다. 이 초상화를 그린 존 콜리어는 다윈을 둘러싼 논쟁에서 그를 옹호했던 토머스 헉슬리의 사위다. 초상화는 1881년 제작된 작품을 다시 그린 것이다. 다윈의 장남이 초상화미술관에 이를 기증하며 보낸 서신에서 “모작으로서 원본을 능가한 작품”이라 평한 바 있다.
가수 에드 시런이 자아 성찰하는 모습을 담은 초상화(위쪽 사진). 남녀 두 성별로 살았던 인물인 슈발리에 데옹.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제공
현대에 들어 초상은 그 방식과 역할에 혁신을 맞았다. 유명 동화 작가 루이스 캐럴은 사진 형식의 초상예술을 초기에 주창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다니던 대학의 학장 딸을 사진에 담았고, 훗날 이 소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썼다. 유명한 프랑스 군인이자 외교관이었던 슈발리에 데옹의 초상은 정체성을 탐색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그는 태어나 49년을 남자로 살았으며, 나머지 33년은 여자로 살았다. 초상은 그가 여자로 살 때 그렸다. 공적으로 남녀 양성으로 살았던 인물의 모습이 국립초상화미술관에 전시되기는 그가 처음이다. 누군가를 묘사하는 것 이상으로 초상은 시공간, 죽음을 초월해 실제 인물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양수미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각각의 작품들과 눈을 맞추고 강렬히 다가오는 인물을 발견하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8월 15일까지. 성인 9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 6000원.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