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DB
윤 전 총장이 3월 4일 여권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에 반대하며 사퇴한 이후 검찰에서 진행된 대형 수사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긴급출국금지’ 사건이 거의 유일하다. 불법 출국금지에 개입한 혐의로 이규원 검사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기소한 수원지검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소환조사하면서 ‘윗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수사가 이 정도로 진척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확실하고 탄탄한 증거가 바탕이 된 공익제보자의 신고가 큰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연초 해당 의혹이 불거진 직후 별도수사팀을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하도록 지휘한 윤 전 총장의 결단도 실체를 규명하는 토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전 총장은 1월 기존에 수사를 해온 안양지청의 ‘사건 뭉개기’ 논란이 제기되자 지난해 서울동부지검에서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국장 감찰 무마 사건을 수사했던 이정섭 부장검사를 수사팀장으로 지정하고 사건을 수원지검 본청으로 재배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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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외풍을 막고 수사를 독려하던 검찰총장이라는 ‘바람막이’가 사라진 것이 일선 수사팀에게는 믿고 의지할 지향을 잃어버리게 함으로써 수사 진도를 내지 못하는 근본 이유라는 시각이 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의혹 사건도 경찰과 검찰이 압수수색과 관련자 조사를 거쳐 5개월째 수사를 벌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의혹 당사자인 이 차관 소환 조사도 하지 못한 채 수사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경찰 수사는 서울경찰청이, 검찰은 이성윤 검사장이 있는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에서 수사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이 ‘적폐 수사’를 지휘하던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검찰총장으로 취임한 후 현 정부 핵심 인사들을 향해 ‘살아 있는 권력’ 수사에 나섰을 때만 해도 고위층 비리에 대한 국가 사정(司正) 기능이 작동되고 있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입시 비리 등을 파헤친 ‘조국 수사’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선을 위해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는 여권이 수사팀을 해체시키는 검찰 인사를 단행해 충분한 수사를 하지 못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참모진 등을 기소하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올 3월 4일 윤 전 총장이 검찰 수사권을 지키고 대권 출마를 위해 검찰을 떠난 이후에는 힘겹게 굴러가던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스톱된 상태다. 그나마 지난해 말 ‘추-윤 갈등’ 사태 이후 소신 행보를 하고 있는 조남관 총장 권한대행(대검 차장검사) 체제가 중심을 잡으면서 검찰이 정치적 사건을 원칙대로 처리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법조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