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남은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신경계 작용 독성 물질인 VX에 의해 독살됐다. 손에 독성 물질을 묻히고 김정남에게 몰래 접근해 그의 얼굴을 문지른 도안티흐엉과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는 재빨리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고 중독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남은 2시간 만에 서서히(혹은 급속히) 죽어갔다. 당시 그의 사망 사실 못지않게 그를 죽이는 데 사용된 VX의 강력한 독성에 모두 놀랐다.
▷현실은 종종 상상을 뛰어넘는다. ‘공각기동대’나 ‘인셉션’ 같은 SF 영화를 보면 사람의 기억을 조작해 의식 없는 살인도구로 이용한다. 그런 건 아직 공상일 뿐이다. 북한은 유튜브가 전 세계적 인기 매체라는 점, 유튜브에 몰래카메라 상황극 영상이 흔하다는 점, 보통 한번 설정한 상황극 형식에 다양한 장소와 사람을 시리즈로 담는다는 점을 이용해 누구라도 쉽게 속아 넘어갈 방식으로 의식 없는 살인도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도안티흐엉은 맨손으로 VX를 만졌다. 독극물인 줄 알았다면 맨손으로 만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해독제를 맞은 증거도 없다. 해독제를 맞아야 했다면 유튜브를 위한 몰래카메라 촬영인지 의심하게 됐을 것이다. 김정남은 평범한 젊은 베트남 여성이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독극물 노비초크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와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을 한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렸지만 죽이지는 못했다. 김정남 암살은 북한이 러시아를 뛰어넘는 암살 기술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서운 집단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